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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30대 ‘영끌 부부’ 요즘 잠 못 이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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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 직장인 A씨(31)는 내년 출산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임신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를 샀는데 다음 달부터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만 매월 300만원이 나가기 때문이다. A씨는 “맞벌이 부부 소득에 맞게 대출을 받았는데 육아휴직을 하면 한 명의 급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며 “그렇다고 서둘러 복직을 하자니 베이비 시터 비용만 월 200만원 이상 들 것 같아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B씨(36)가 육아휴직을 4개월 남기고 올해 복직한 이유도 대출금 때문이다. B씨는 “남편의 월급과 육아휴직급여를 합하면 500만원 수준인데 그 절반인 250만원이 대출금으로 나갔다”며 “생활비를 아끼느라 아이의 밤 기저귀를 살지 말지 망설이는 내 모습이 너무 서글펐다”고 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고금리에도 ‘패닉 바잉(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 때문에 주택 구매)’에 나선 신혼부부가 육아휴직 때 커지는 원리금 부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근까지 청년층의 가계대출이 가장 크게 늘었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39세 이하의 1인당 주택 관련 대출은 평균 5504만원으로 2019년 2분기(3890만원)보다 1614만원 늘었다. 4년 새 41% 증가다.

39세 이하의 소득 대비 대출 비율(LTI)도 2019년 4분기 223%에서 지난 2분기 262%로 39%포인트 상승해 전 연령층 평균 상승 폭(34%포인트)을 웃돌았다. 월 소득만으로는 내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청년층이 향후 집값 상승·금리 인하 기대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수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육아휴직으로 소득이 감소할 경우 원리금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중앙일보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대출 제도 등을 살펴본 결과 육아휴직 사유만으로 원리금 납부 중지나 금리 인하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은 자영업자의 폐업·근로소득자의 실직 등 중대한 사유일 경우에만 심사를 거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소득 수준이나 신용도가 상승했을 때 쓸 수 있다. 일부 사내 대출이나 정책 대출에 한해서만 육아휴직 기간 원금 상환 유예가 가능하다.

정부·여당은 결혼·출산 등 생애주기에 맞는 금융지원 확대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4일 발표한 ‘청년 내 집 마련 1·2·3’ 정책은 무주택 청년이 6억원 이하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연 2%대 낮은 금리로 장기 대출해주는 게 주된 골자다. 여기에 결혼(0.1%포인트)·첫 출산(0.5%포인트)·추가 출산(0.2%포인트)을 하면 금리가 최저 연 1.5%까지 낮아진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하지만 출산 부부, 육아휴직자 등 대상을 특정해 금리 혜택을 주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혼자나 이미 육아휴직을 사용한 부부, 불임부부 등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다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내년 초 발표할 경제적 지원 대책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현재 최대 150만원인 육아휴직급여를 상향한다면 신혼부부의 대출금 부담 완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는 게 한계가 있는 만큼 시중은행이 ‘상생금융’ 차원에서 육아휴직 기간에 한정한 원금 상환 유예나 금리 인하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급여소득자와 비급여소득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다”며 “대상자가 많아지면 최장 1년까지만 혜택을 준다고 해도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 파급력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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