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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능 감독까지 위협…학부모의 여전한 교권 침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30 청년위원회 교사들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교권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30 청년위원회 교사들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교권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이초 사건 이후도 끊이지 않는 ‘학부모 갑질’

‘내 새끼 지상주의’ 버리고 공동체 의식 높여야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일부 학부모의 민원 제기와 압박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6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학생의 부정행위를 적발한 한 교사는 해당 학부모의 과도한 항의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특별 휴가와 심리 상담을 받아야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선 전교 부회장으로 당선된 자녀가 선거규칙 위반으로 당선 무효 결정을 받자 해당 학부모가 고소·고발과 민원 제기를 남발해 학교 교육활동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 사례도 나왔다.

서울교육청과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수능 부정행위 판정에 항의하는 학부모는 피해 교사의 학교까지 찾아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피켓에는 피해 교사의 실명과 함께 ‘파면’ ‘인권침해 사례 수집 중’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해당 교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물론 수능의 공정성까지 위협하는 사안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학부모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경찰대 출신으로 변호사 자격증까지 소유한 법조인이었다.

수능 감독관을 맡은 교사의 개인정보나 근무지는 철저히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 감독관이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시험을 관리하고 부정행위자를 적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수험생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면 이의신청 등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지 사적 보복이나 위협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해당 학부모는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수능 감독관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사적 보복을 시도했던 점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자녀의 전교 임원 당선 무효에 항의하는 학부모는 해당 학교를 상대로 고소·고발 7건, 행정심판 청구 8건, 정보공개 청구 300건을 제기했다고 한다. 관할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한 국민신문고 민원 신청도 24건이나 됐다. 서울교육청이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민원”이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학교 업무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학생에게 돌아간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교육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교사가 거리 집회 등을 통해 교권 침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교육계에선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개선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학교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만 귀하다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버리고 자녀가 올바른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