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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쾌유를 빈 「냉수욕 효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평생 남의 질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종사하던 한 의료인이 노경에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들·딸·사위가 모두 의사였지만 아버지를 치료할 아무 방도가 없었다. 환자가 자신의 병세를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가족의사들마저도 쾌유될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했다. 오직 고통을 덜어드리는 진통요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인술의 한계와 무력감에 빠진 의사 자녀들은 침통함을 침묵으로 삼키며 병상을 지켜야 했다.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날이었다.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던 어느 날 의사아들은 『아버님! 저는 요즈음 아버님의 쾌유를 위해 아침마다 냉수욕을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환자인 아버지는 그윽한 눈빛으로 아들을 마주 바라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제는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그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입시공부를 하던 무렵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네가 이처럼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목표한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데 내가 함께 도와주고 싶어도 길이 없으니 나는 추운 겨울이지만 냉수욕을 하여 너를 격려하겠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냉수욕을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주택구조가 한옥인 데다 장작으로 군불을 때던 시절이라 방안공기는 썰렁해서 아들을 위해 냉수욕을 하고 난 아버지의 체온이 방안공기보다 따뜻해 몸에 하얀 김이 서렸다.
지난날 아버지가 수험생인 자기를 격려하기 위해 추운 겨울 아침마다 했던 것처럼 인술에서 길을 찾지 못한 의사아들은 아버지의 쾌유를 위해 냉수욕으로 효성을 다한 것이다.
생의 끝, 죽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 아버지가 아들의 냉수욕에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을까!
대학의 좁은 문을 통과해야 되는 입학시험이 임박해오고 있다.
모든 수험생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안타깝도록 불안해하고 있다. 자녀의 대학입학이 마치 인생의 모든 목표인 것처럼 혼신의 정성을 다 바치는 어버이들, 대학입시 때가 되면 어버이들의 사랑도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어버이에게 「냉수욕 효도」를 바칠 자녀들이 오늘의 이 시대에도 자라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청수(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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