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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세계는 SMR 경쟁, 한국은 예산 전액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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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세계 각국의 경쟁적 노력이 치열하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를 정의하는 택소노미(Taxonomy)에 넣었고, 지난 21일에는 ‘Net Zero(탄소중립) 산업법’을 통과시키면서 SMR을 비롯한 원자력 산업 지원을 포함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 전력은 미국 GE와 일본 히타치 합작으로 개발한 SMR인 BWRX-300 건설 계획을 발표하더니 최근엔 3기를 추가로 더 짓기로 했다. 미국 최대의 전력공기업인 TVA도 BWRX-300 도입을 위해 투자에 나섰다.

EU·캐나다·미국 등 투자 늘려
여야 합의했는데 민주당 돌변
국내·해외시장 다 포기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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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을 선언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해오던 스웨덴은 2045년까지 원전 10기를 짓겠다는 드라마틱한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스웨덴의 원전 사업자인 포툼은 SMR 도입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한국이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을 포함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한국의 거대 야당은 혁신형 SMR 개발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세계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결정이자 탄소중립과 미래 먹거리를 모두 놓치는 잘못된 결정이다.

혁신형 SMR 개발 사업은 국가 과제로 2021년 제10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정식 제안됐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시국이었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산업계와 원자력학회 등에서 필요성과 기술성을 논의했다. 당시 국회 차원에서도 ‘혁신형 SMR국회 포럼’이 결성됐고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구미을)과 이원욱 민주당 의원(화성을)이 공동의장을 맡는 등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혁신형 SMR을 국정과제로 확대하고 2028년 설계인증을 취득한 후 2030년대 해외 SMR 시장 및 국내 건설을 겨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혁신형 SMR 사업단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혼란스러운 정치권에서 여야가 모처럼 의견이 일치돼 합의하고 정권을 넘어 추진된 매우 드문 협치 사례다. 이런 혁신형 SMR 개발을 야당이 판을 뒤엎어서는 안 된다.

야당의 비토에는 최근 불거진 미국 뉴스케일의 SMR 건설이 무산된 것이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뉴스케일의 최초 SMR은 미국 유타주 전력 시장을 대상으로 추진됐다. 올 초 시행한 경제성 평가에서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보조금을 포함해도 전력 단가가 메가와트시(㎿h)당 89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2년 전보다 50% 넘게 오른 수치다. 유타주의 평균 전력 소매가격이 ㎿h당 88달러이니 경제성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유타주를 겨냥한 초도 원전 건설은 무산됐으나 뉴스케일은 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에 대한 수출과 데이터 센터에 필요한 전력 공급용으로 건설 추진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케일의 수출 대상 잠재국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뉴스케일이 미국에서는 경제성을 못 맞췄지만, 한국에 짓는다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2022년 한국전력의 평균 전력 구매가는 ㎾h 당 155원 수준이었다. 지금도 가스발전은 ㎾h 당 약 221원 선이다. 뉴스케일의 공급가는 보조금 없이 ㎿h당 119달러이니, ㎾h당 154원 내외이다.

한국에 짓는다면 인건비와 원전산업 인프라를 볼 때 미국보다 더 싸게 지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두산에너빌리티·GS에너지·삼성물산 등 한국의 민간 기업들도 뉴스케일에 많은 투자를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제작 분야, 삼성물산은 건설 분야, GS에너지는 비록 화력이어도 발전소 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

뉴스케일이 이들 한국 기업과 연합해 한국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전혀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SMR은 소형이라 자가발전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굳이 전력시장을 겨냥하지 않더라도 24시간 전기를 필요로 하는 철강공장, 데이터 센터 등 자가발전이 필요한 민간 기업에 직접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은 혁신형 SMR 개발 예산을 느닷없이 전액 삭감했다. 2028년 설계인증 취득을 위한 심사 신청까지 불과 2년이 남았고 설계 개발에 박차를 가해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 삭감은 “개발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해외시장 진출은커녕 국내시장마저 외국 SMR에 내주지 않으려면 예산을 복원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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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