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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버금가는 윤석열표 교육개혁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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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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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30주년이다. 전국 규모의 대학입학시험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수능은 1993년 주입식 교육과 암기위주 입시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특히 수능 실시 2년 뒤인 1995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굳은 의지로 5·31 교육개혁을 단행하며 교육 패러다임을 바꿨다. 전문가들은 이때를 “국가적 교육전략의 원년”(김성열 경남대 명예교수, 전 교육학회장)이라고 부른다.

물론 과거에도 국가적 교육정책은 있었다. 1949년 교육법 제정으로 인적 투자를 대폭 늘렸고, 해방 직후 78%에 달했던 문맹률이 10년 후 10%대로 떨어졌다. 6·25 전쟁 때도 천막 교실을 운영했고, 1967년엔 직업훈련법을 제정해 산업역군을 길렀다. 1970~80년대 학교와 대학은 고도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미래전략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한 건 1995년이 처음이다.

교육 청사진 제시한 1995년 개혁
현재 ‘킬러문항’ ‘카르텔’만 부각
AI 시대엔 새 교육 패러다임 필요

개혁을 주도한 인물은 고 박세일 서울대 교수와 차례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병영(연세대)·이명현(서울대) 명예교수였다. 공급자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며 자율과 경쟁·다양성 확보에 초점을 뒀다. 학교운영위 설치, 학점은행제 도입, 학교 다양화, 비교과 학생부 기재 등 오늘날 익숙한 교육제도의 대부분이 이때 마련됐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5·31 교육개혁 정신을 바탕으로 권위적 위계 구조였던 교육 시스템을 수평적으로 바꿨다. 특히 수능 하나로 전국 학생들을 줄 세워 평가하는 대신 각자의 적성과 특기에 맞춰 대학 진학이 가능하도록 입시제도를 손봤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입시를 더욱 다변화해 학생의 선택권을 높이고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을 설립하며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현실은 오히려 20세기로 후퇴한 모습이다. 암기 위주 주입식 수업은 그대로이고, 대학에서 학생을 줄 세워 뽑는 방식도 여전하다. 변한 것은 추락한 교권과 실종된 인성교육이다. 사교육비도 지난해 역대 최대인 26조원에 달했다. 학생들의 공부량은 많아졌지만 학력은 오히려 퇴조했다. 중3 학생의 국어·수학·영어 기초학력 미달 비율(평균)은 2012년 2.2%에서 2022년 11.1%로 급증했다.

이는 5·31 교육개혁의 시효가 이미 다했다는 증거다. 한 세대(30년)가 지난 만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나올 때도 됐다. 특히 선진국의 문턱에서 선 우리는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시대적 변화에 대응할 인재가 필요하다. 패스트팔로워로 선진국과 격차를 줄여가며 성장해 왔던 20세기 방식으론 더 이상 경쟁이 어렵다.

특히 AI는 앞으로 일자리와 사회구조 전반을 크게 바꿔 놓을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중 상당수는 10, 20년 후 학생들이 사회에 나오면 쓸모없는 지식이 돼 있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직업이 성인이 된 뒤엔 이미 사라지고 없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교육 현장의 누구도 속 시원히 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취임 초 윤석열 대통령이 밝혔듯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교육개혁을 실행하면 된다. 지난 정부처럼 입시제도만 먼저 바꿔놓고 교육정책을 끼워 맞추는 식이어선 안 된다.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이를 키우려면 어떤 내용의 교육과 학습 방식이 필요한지 체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각계 전문가들의 지혜와 정파를 넘나드는 통합적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 달여 후면 임기 3년차이지만, 대통령의 교육개혁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기억에 남는 건 오직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 뿐이다. 물론 고교 수준을 벗어난 고난도 문항 출제를 금지하고, 입시업계와의 유착을 잡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대통령이 말한 교육개혁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국가적 차원의 교육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 5·31 교육개혁이 30년을 맞이하는 2025년에는 창의성과 인성, 소통능력 등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청사진이 필요하다. 이제 1년여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마침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5·31 교육개혁을 입안했던 전문가 그룹의 막내였다. 그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YS가 그랬듯 교육개혁을 이루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