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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강인에 농락당한 中축구…월드컵 앞두고 팬들도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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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는 일이 있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세계적인 메이저 클럽인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 파리 생제르망의 이강인, 여기에 세계적 메이저까진 아니지만 황희찬, 이재성, 황인범, 조규성, 황의조 등 11명 스쿼드 거의 전부를 유럽파로 채울 수 있는 수준이 됐다.

21일 열린 중국과의 북중미 월드컵 예선은 경기 전부터 뜨거웠다. 한국 선수단이 입국한 선전(深圳) 공항에는 손흥민에게 환호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중국의 적수를 대하는 게 아니라 아이돌 스타를 영접하는 분위기였다. 필자는 10년 전 상하이 푸둥(浦東) 공항에서 TV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출연자들이 도착했을 때 공항을 들썩였던 인파를 연상했다.

경기 내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손흥민이 전반전에서 페널티킥과 헤더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고 후반 손흥민의 그림 같은 프리킥과 정승현의 헤더로 3대0 완승을 거뒀다. 중국을 겨냥해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아시아 쿼터를 4.5장에서 8.5장으로 늘렸지만 중국의 본선 진출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손흥민과 이강인의 몸에 중국 관중이 쏜 레이저 포인터가 표시돼 있다. 서경덕교수 SNS 갈무리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손흥민과 이강인의 몸에 중국 관중이 쏜 레이저 포인터가 표시돼 있다. 서경덕교수 SNS 갈무리

홍색 물결을 이뤘던 경기장의 중국 관중들은 좌절감에 한국 관중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 경기 후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관중석에 앉아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여성 두 명을 향해 수많은 중국 관중들이 비난했고, 한 남성은 이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손흥민 팬으로 보이는 토트넘 유니폼 차림의 한 남성에게도 중국 팬들은 비난을 쏟아냈고, 그를 둘러싸고 항의가 거세지자 경기장 요원이 그를 보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 요원은 문제의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경기 후 바이두, 소후 같은 중국 주요 포털사이트엔 자조하는 반응으로 넘쳐났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를 다 내보내는 건 반칙 아닌가” “한국 일본은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가야 한다” “적은 점수 차로 지면 우리가 이긴 걸로 치자” “공한증(恐韓症)이란 말도 의미 없어졌다. 지는 게 너무 당연하다” 같은 댓글들이 이어졌다.

중국의 축구 실력은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왜 이렇게 축구를 못하는가 하는 주제가 또다시 이슈가 됐다.

중국은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축구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축구와 농구, 수영에만 선수단을 파견했다. 1954년엔 당대 최고 축구팀을 보유한 헝가리에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을 2년간 유학시켰다. 문화대혁명이란 환란 중이던 1971년에도 마오는 올림픽을 제패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그 뒤를 이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죽기 전 소원이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땐 중계권도 없이 불법으로 경기를 방영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도 직접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유일했다. 개최국 한국과 일본이 지역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다른 조에 엮이는 천운에 힘입었다. 그렇게 진출한 본선에선 코스타리카(0-2), 브라질(0-4), 터키(0-3)에 무득점 완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역사를 겪어오며 시진핑은 대대적인 축구 육성 정책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축구개혁 종합방안 50개조’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아시아 일류 수준의 프로축구 ▶남자대표팀 아시아 선두 실력 확보 ▶장기적으로 월드컵 개최다. 이를 위해 전국에 2만 개 축구 전문학교 설립 계획도 내놨다. 이른바 ‘2000명 리오넬 메시 만들기’다. 하지만 윗선의 지시가 그대로 전달되긴 힘든 법이다. 곳곳에서 전시행정이 드러났다. ‘축구 체조’가 등장하고 탁구, 농구 같은 전통적 강세 종목들이 축구 육성 때문에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

2017년 중국과 독일의 12세 이후 축구 국가대표 경기에 방문한 시진핑 부부. [EPA]

2017년 중국과 독일의 12세 이후 축구 국가대표 경기에 방문한 시진핑 부부. [EPA]

축구는 빈자(貧者)의 스포츠였다. 가지고 놀 게 없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이들이 축구공 하나로 열정을 불태웠고 그 가운데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이 탄생했다.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프로 축구 선수들은 대다수가 소위 노동계급(working class) 출신들이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현지에서 운영되는 유소년 축구 캠프는 우리 돈으로 1000만 원, 중국의 웬만한 직장인 연봉을 내야 한다. 소황제(小皇帝)로 자라난 부유한 집안 아이들이 누리는, 교양 차원의 귀족 스포츠인 것이다.

중국의 슈퍼리그는 실력에 비해 훨씬 높은 고액 연봉을 지급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 프로 선수들은 굳이 사서 고생해가며 유럽 리그에 도전하지 않으려 했다. 중국 슈퍼리그 구단들을 비싼 돈을 들여 세계적 수준의 공격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니 중국 선수들은 공격수가 되는 걸 기피했고 국가대표팀에서 기량 좋은 공격수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중국인들은 스페인 RCD에스파뇰에서 3년간 뛰었던 우레이(武磊)를 신적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는 모기업의 사정 악화로 프로축구 구단들이 선수들 임금을 체불하는 재정난을 겪었다. 중국 축구팬들의 한숨이 쌓여가고 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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