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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트럼프 당선이 우리 외교에 미칠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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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미국 대선이 1년 남았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재 트럼프의 전국적 지지도는 바이든보다 약간 높고, 경합 주에서도 우위에 있다. 물론 트럼프에게는 사법 리스크가 있고, 극단적 성향에 대한 우려도 상존한다. 바이든에게도 건강문제, 인플레 등 약점이 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50%는 된다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일 때 그는 치우친 주장을 정책으로 밀어붙인 적이 많았다. 지금의 트럼프는 분노와 복수심에 차고, 자기 식대로 하려는 결의로 충만하다. 트럼프 진영의 측근 참모들은 트럼프 1기 때 기득 세력인 ‘딥스테이트(Deep State·숨은 권력집단)’에 의해 트럼프의 ‘참신한’ 정책들이 좌절된 사례가 많았다고 본다. 이들이 보기엔 켈리 비서실장,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볼턴 안보보좌관들이 방해꾼들이다. 참모들은 트럼프 2기에는 ‘딥스테이트’의 방해를 막을 방안을 인사와 운영 측면에서 마련하고자 부심하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그는 더 극단적인 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만류할 인물은 아예 기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국의 한국 안보 공약 약화하고
한국 배제 미북대화 재개 가능성
대중 견제 강화로 한국 부담 커져
심각한 파장 지금부터 대비해야

그렇다면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우리 외교에 닥칠 변화를 따져 보는 것이 괜한 일은 아닐 것이다. 미국 대선 즈음에 임기의 반환점을 맞는 윤석열 정부는 임기 후반부를 트럼프 행정부와 함께하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달라질 것 중 첫째는 동맹 공조의 수준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나 동맹 경시가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나토로부터 한미동맹에 이르기까지 공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미 간에는 연합훈련, 전략자산, 방위비 등 동맹 운용을 둘러싼 논란이 늘어날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군 철수 내지 감축 주장이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대외정책의 근간을 동맹 강화에 두고 바이든 행정부와 확장억제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및 나토와의 협력 강화를 추진해왔다. 이런 윤석열 정부로서는 트럼프가 동맹을 새롭게 규정하고 한미 공조의 톤을 바꿀 경우, 거시적 측면에서 정책의 철학과 기조를 재조정해야 할지를 놓고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 발(發) 동맹 관련 논란에 대처해야 하는 미시적 측면의 부담도 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주목할 것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경도된 트럼프가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무릅쓰고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할지 의문이 커질 것이다. 트럼프가 확장억제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한·미가 해온 확장억제 강화 노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반작용으로 국내에 핵무장론이 재부상할 수 있다. 그런 분위기가 이어져 차기 대선에서 핵무장론이 이슈가 될 소지도 있다.

두 번째 변화는 미·북 관계다. 지금 북한은 미국 대선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의 당선을 바랄 것이다. 당선되면 김정은은 축하 친서를 보낼 것이다. 트럼프가 회신을 안 하리라고 보기 어렵다. 둘 사이에는 이미 수십 차례 소위 ‘연애편지’가 오고 갔다. 트럼프는 자신이 계속 집권했다면 지금과 같은 북핵 대결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미·북 간에 접촉이 재개될 것이다. 반면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는 피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이 이완되고 남북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재개되는 미·북 대화는 난제가 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가 우리 문제를 북한과 협상하는 상황은 안심할 수 없다.

셋째로 미·중 대립이 더욱 격해져 한국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바이든 시기의 ‘작은 영역에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 류의 절제된 접근은 퇴조하고, 대결 영역이 확대되며 견제의 담장도 높아질 수 있다. 미·중 관계가 디리스킹을 넘어서 사실상 디커플링으로 들어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에 대한 배려는 줄이면서, 동맹을 대중국 견제에 동원하기 위한 압력은 늘릴 것이다. 관련하여 한국이 반도체나 배터리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어렵사리 확보했던 운신 공간이 축소될 소지가 있다. 또 트럼프의 미국 위주 보호주의 정책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처럼 트럼프의 집권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그 파장은 심대할 것이므로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동맹, 북한, 중국 관련 대책이 중요해 보인다. 동맹에 관해서는, 공조가 일정 선 이하로 이완되지 않아야 하고 확장억제에 대한 의구심이 극단적인 정책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한국이 배제된 한반도 문제 협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이 미·중 대립의 와중에 과도한 타격을 입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이런 목표를 염두에 둔 대비책을 연구하고 여론을 모으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한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