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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한규가 소리내다

옆집 성범죄자 체중 알면 안전해지나…美처럼 거주 제한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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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한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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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과 같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이 입법예고된 가운데 가해자의 기본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조두순과 같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이 입법예고된 가운데 가해자의 기본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아동 성범죄자나 상습 성범죄자가 내가 거주하는 집 옆에 살면 기분이 어떨까. 특히 학부모라면 불안감이 높지 않을까. 잔혹한 성범죄자 기사에는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댓글이 언제나 달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형기를 마치면 사회에 복귀한다.

물론 현행법상 성범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범죄예방책이 있기는 하다. 신상정보 등록·공개·고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화학적거세, 치료감호, 보호관찰 등이다. 그러나 국민의 두려움의 근저는 성범죄자의 재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에 있다. 국가의 범죄예방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국민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30개 이상 주가 성범죄 전과자는 학교와 같은 아동 이용시설에서 약 610m 이내에 살 수 없도록 하는 ‘제시카법’을 시행하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성범죄 전과자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피해자 제시카 런스포드의 이름을 딴 법이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이 눈앞에 다가왔다. 법무부가 지난달 24일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등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13세 미만 아동 대상 또는 3회 이상 상습 성폭력을 저질러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한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고위험 성범죄자’는 거주지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제한한다는 취지다. 법무부가 발표하자마자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아무리 성범죄자라도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실질적 구금을 가하는 것은 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안산시여성단체협의회와 선부동 주민들이 지난해 11월 24일 안산시청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두순은 안산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안산시여성단체협의회와 선부동 주민들이 지난해 11월 24일 안산시청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두순은 안산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신상정보 공개만으로는 한계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에 관하여 ‘헌법 위반이다’ ‘인권침해다’라는 논쟁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모든 정책에는 명분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성범죄자에 대한 무수히 많은 재범 방지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또 다른 강력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의도를 손쉽게 외면할 일은 아니다. 먼저 도입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학부모와 어린이집, 유치원 원장, 초·중등학교의 장 등은 성범죄자가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가 우편을 통해 직접 알려주기 때문이다. 정부가 알려준 정보는 아주 자세하다. 성범죄자의 이름, 나이, 키, 몸무게, 최근에 찍은 사진, 주민등록상 주소, 거주지, 성폭력 전과 등 개인정보가 총망라되었다. 성범죄자 정보를 접한 학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에게는 조심하라고만 할 수 있을 뿐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사를 고민하는 가정도 있을 수 있다. 국가의 범죄예방 책임을 가정에 전가한다는 불만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2020년 12월로 기억한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이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당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조두순의 출소에 불안감을 호소하고, 그가 거주할 지역에까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비록 조두순이 7년 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신상정보 공개처분을 받아 어느 정도 재범의 위험성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놓았지만, 흉악한 성범죄자가 주변에 거주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할 수는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13세 미만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중 26.8%가 재범이었고, 13~18세 대상 성범죄자 중 재범 비율은 34.1%에 달했다. 최근 법원에서 17년 전 13세 미만 아동을 강제 추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근식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동 청소년 강간 상해 혐의로 15년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징역형을 살고 나온 지 16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성범죄의 발생 건수도 폭증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1년 성폭력 범죄의 발생 건수는 3만 2898건으로 지난 10년 동안 38.9% 증가하였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피해자 10명 중 1명이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력범죄 중 살인, 강도, 방화 범죄의 발생비는 지난 10년 대비 감소한 반면 성폭력 범죄의 발생비만 증가했다. 법무부의 입법 예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자료=법무부, 그래픽=차준홍 기자

자료=법무부, 그래픽=차준홍 기자

모든 범죄 중에서 근래 사회적 인식이 가장 급변하고 있는 범죄를 꼽으라면 바로 성범죄다. 필자가 형법을 처음 공부하던 1990년대 초만 해도 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성폭력 범죄는 ‘정조(貞操)에 관한 죄’로 규정되었다. 한마디로 운 나쁜 여성의 사생활로 치부되었다. 여기에 더해 성범죄는 6개월 이내 고소해야만 처벌되는 친고죄였고, 성범죄자가 직계존속이면 고소조차 할 수 없었다. 성 인지 감수성이 대두한 요즘 시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도 성범죄자 거주 제한 

개인정보가 대부분 공개되는 신상정보 공개ㆍ고지 제도, 형기를 마쳤음에도 장기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해야 하는 제도, 약물을 통해 화학적거세를 할 수 있는 제도들도 분명히 인권침해 요소는 있지만,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여 근래에 모두 안착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수 선진국도 이미 오래전에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거주 제한을 하고 있다. 캐나다는 법원이 거주지 지정 등을 부과할 수 있으며, 프랑스도 성범죄자는 지정된 곳에 거주해야 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모든 제도는 완벽할 수 없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는, 살인과 더불어 가장 잔혹한 범죄인 성폭력 범죄자는 범죄자 중에서도 기본권이 제한되는 정도가 가장 커야 한다. 따라서 법안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도 없이 인권침해라며 무조건 백안시하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현재 제기되는 문제점, 예를 들면 실질적인 구금이 되지 않는 방법, 성범죄자 거주 시설을 어디에 둘 것인지 등을 보완하여 이른 시일에 입법이 되어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출소한 고위험 성범죄자는 325명이며 올해 69명을 비롯해 2025년까지 매년 60명가량이 출소할 예정이다. 성범죄자 때문에 왜 선량한 이웃이 이사 걱정을 해야 하나. 지금은 무엇보다도 우리 어른들이 성폭력 범죄로부터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손을 모을 때다.

김한규 변호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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