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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교도소 수능장' 소년 수용자가 남긴 말 "한 문제라도 풀어볼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능을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소년수들이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뉴스1

수능을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소년수들이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뉴스1


“한 문제라도 풀어보겠습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16일 오전. 부모님의 손이 아닌 ‘교장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한 뒤 고사장으로 들어간 수험생들이 있다. 서울 남부교도소 만델라 소년학교의 학생들이다.

교도소 안 학교인 만델라 소년학교는 올해 3월 2일 문을 열었다. 만 14~17살 소년 수용자를 위한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교처럼 정규 수업을 진행한다.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소년범죄 종합대책’에서 수도권에 ‘학과교육 중심 소년전담 교정시설’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설치됐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는 넬슨 만델라의 명언을 교훈으로 삼으면서 ‘만델라 소년학교’라고 이름 붙여졌다.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 입구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말이 담긴 문구가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 입구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말이 담긴 문구가 걸려 있다. 뉴스1

김종한 만델라 소년학교 교장은 이날 교도소 안에 설치된 고사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배웅한 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소회를 전했다. “수능장에 들어갈 때 한 문제라도 풀어보겠습니다 하면서 의욕을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참 기분이 좋았다”는 그는 “친구들 손을 한 명씩 잡고 ‘수능이라는 시험이 부담되겠지만 최선을 다해 멋있는 도전을 이제부터 시작해 보자’ 말했다”고 밝혔다.

새벽 1시까지 영어 단어 외워 

학생들이 처음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였다. 지난 3월 개교할 땐 모두 36명이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고 이 중 27명이 5개월 만인 8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10명이 수능 준비반에서 공부하며 수능에 도전했다.

김씨는 “친구들이 새벽 1시까지 같이 책상에 모여 영어 단어 외우기 경쟁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다”고 했다. 검정고시보다 훨씬 난도가 높은 수능에 처음엔 겁 먹었던 학생들이지만 10명으로 시작해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고사장에 들어갔다. 오전 8시 교실에 들어가 자율학습과 수업을 하고 오후 5시에 나와 저녁을 먹고 다시 오후 9시까지 공부를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주말도 예외는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땐 반신반의했었다”는 김씨는 “막상 시작해보니 어린 소년들이라서 그런지 공부하며 약간의 성취감을 이루고 흥미를 가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영어 알파벳 B와 D를 구분하는 것도 어려워했던 친구들이 옆에 친구들이 하니까 자기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봤다”고 덧붙였다.

수능을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한 소년수 책상에 필기 도구가 놓여 있다. 뉴스1

수능을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 내 교육시설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한 소년수 책상에 필기 도구가 놓여 있다. 뉴스1

‘세금 낭비’ 지적에 “제2, 제3의 피해자 막는다면”

일각에선 ‘엄연히 범죄자인데 세금을 낭비해가면서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씨는 “이 친구들이 어린 나이에,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출소한다면 그래서 일반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게 교정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 (공부를 통해) 반성의 시간도 가지고 얘기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공부를 통해 새로운 꿈을 키우게 된 학생들도 있다. 김씨는 “범죄자로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며 ‘나도 수의사가 되고 싶다, 인테리어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며 “아이들이 정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새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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