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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원 여성만 뽑았다…34세에 1조 쥐고 물러나는 '걸 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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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데이팅 앱 범블의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 Copyright: Whitney Wolfe Herd Instagram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데이팅 앱 범블의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 Copyright: Whitney Wolfe Herd Instagram

젊은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칭하는 말, '걸 보스(girl boss)'의 대명사, 휘트니 울프 허드(34). 여성 중심의 데이팅 앱인 범블(Bumble)을 창업한 그가 지난 6일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범블 이사회 회장직은 유지하지만, CEO직을 내려놓는다고 발표하면서다. BBC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그를 인터뷰하면서 "데이팅 업계의 판도를 바꾼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범블은 여성이 주도권을 잡는 데이팅 앱이다. 먼저 대화를 청하는 이를 여성으로 한정한 게 범블의 차별화 포인트다. 남성이 주도권을 갖던 대개 데이팅 앱 업계의 룰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이런 전략은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울프 허드는 원래 데이팅 앱 대표주자 틴더(Tinder)의 공동 창업자였다. 틴더의 최고마케팅담당자(CMO)로 일하던 그는 "사내 인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회사를 고소하고 퇴사했다. 지목된 인물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틴더는 그에게 합의금을 지불했다. 울프 허드는 틴더 퇴사 과정에서 상당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과거 인터뷰에서 "3주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술만 마셨다"고 할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달 초 여성 주도 데이팅 앱 범블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단독 보도한 지면. 오른쪽이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 신임 CEO도, 기사를 쓴 기자도 여성이다. Whitney Wolfe Herd Instagram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달 초 여성 주도 데이팅 앱 범블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단독 보도한 지면. 오른쪽이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 신임 CEO도, 기사를 쓴 기자도 여성이다. Whitney Wolfe Herd Instagram

그가 데이팅 앱 업계에 뛰어든 것 자체도 10대 만났던 남자친구의 폭력적 행동이 문제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해당 인물은 역시 부인하고 있지만, 확실한 건 울프 허드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사업의 기회로 바꿔냈다는 것이다. BBC는 "고난이 닥친 뒤 기회가 온다는 말이 떠오르는 경우"라고 전했다.

팬데믹 시기는 그의 경영에 청신호로 작용했다. 오프라인 만남이 제한되면서 데이팅 앱 가입자 수가 급증하고 수익도 폭발했다. 2021년엔 나스닥에 상장하는 성과도 이뤘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경제 전문지 포천에 따르면 그는 당시 자수성가 여성 CEO 중에서 최연소 억만장자였다. 자신이 세운 기업을 상장시킨 여성 CEO 중에서도 최연소였다.

범블 앱 화면. 로이터=연합뉴스

범블 앱 화면. 로이터=연합뉴스

범블은 여성 주도 데이팅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물론, 사내 문화도 혁신했다. 2014년 창업 당시 거의 전 직원을 여성으로만 채용한 게 대표적이다. 그의 후임 CEO 역시, 여성이다. 울프 허드는 BBC에 "여성 기업인들이 현역으로 남아있는 숫자가 얼마나 적은 지 생각하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여성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의 혁신은 젠더를 넘어선다. 2022년엔 "전 직원들이 번아웃 위기에 있다"며 최소 인원만 남기고 전체 인원이 유급 휴가를 1주일 무조건 갈 것을 지시했다. 1주일 동안 회사 관련 연락도 일절 금지했다고 한다.

울프 허드는 정작 어떻게 데이트를 했을까. 그는 텍사스 석유 기업의 후계자인 마이클 허드를 만나 아들 둘을 뒀다. 울프 허드가 남편을 만난 건 범블이 아닌, 스키 여행이었다고 한다. 둘은 2013년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콜로라도의 애스펜에서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고, 2017년 결혼했다.

울프 허드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이뤘을까. 그가 찾은 답은 일과 가정을 구별하지 않는 거였다. 그는 BBC에 "아들 둘을 회사에 데리고 오는 건 내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육아와 일을 구분하는 순간 둘 모두에 충실한 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내게는 정답인 이 방법이, 모두에게 다 통하리라는 법은 없다"고.

여성 주도 데이팅 앱 범블의 창업자인 휘트니 울프 허드가 사무실에서 아들을 돌보는 사진. 울프 허드 본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Whitney Wolfe Herd Instagram

여성 주도 데이팅 앱 범블의 창업자인 휘트니 울프 허드가 사무실에서 아들을 돌보는 사진. 울프 허드 본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Whitney Wolfe Herd Instagram

그가 CEO직을 내려놓은 이유는 뭘까. 그의 두 아들이 취학 연령이 되어가서는 아닌 듯 하다. 울프 허드는 자신의 사퇴 이유에 대해 "나의 이번 결정이 창업자로서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모험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수사만 내놓았다. 그가 명확히 밝히진 않았으나 단초는 경영 성적표에서 찾을 수 있다. 범블은 2014년 나스닥 상당 당시 1주에 76달러로 거래를 시작했지만 최근엔 10달러 초반으로 폭락했다. 경영 성적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 그의 자산 규모는 포브스 지 집계에 따르면 약 15억 달러(약 1조 98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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