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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히말라야" 29층 5번씩 오르는 심장병 어린이의 도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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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이 11일 북한산 둘레길 산행에 나섰다. 사진 서울대병원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이 11일 북한산 둘레길 산행에 나섰다. 사진 서울대병원

“내년 겨울에는 히말라야에 꼭 오를 거예요.”
선천성 심장병으로 생후 7일 때 수술받은 경험이 있는 문준호(13·부산) 군의 취미는 등산이다. 그의 내년 소망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대동맥 축착증과 심방중격결손(ASD) 등 병명도 생소한 진단을 받고 체중 3.15㎏의 상태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그이지만, 현재는 몇 달에 한 번 검사만 받으면 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년 2월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하는 문군은 요즘 자신이 사는 29층 아파트를 매일 5번씩 오르는 자체 ‘특별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문군은 “꾸준한 등산으로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라며 “반드시 히말라야에 올라 나와 심장병 어린이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히말라야 등정 꿈꾸는 심장병 어린이들

문준호(사진 왼쪽)군과 조병준군. 내년 1월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한다. 채혜선 기자

문준호(사진 왼쪽)군과 조병준군. 내년 1월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한다. 채혜선 기자

문군은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어린이·청소년과 그 부모가 뭉친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이하 환우회)에서 등산을 익혔다. 이 모임은 2016년부터 8년째 주말마다 전국 지부별로 산행을 이어오고 있다. “심장병이 있어도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런 취지에 따라 환우회는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 ‘SPECIAL HEART(특별한 심장)’라는 문구가 적힌 상의를 입고 산을 오른다. “(아픈) 아이들이 등산해도 되냐”고 묻는 일부 등산객이 있지만, 아이들은 지난 10월 해발 1708m에 이르는 설악산 대청봉을 완등한 실력파다.

11일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환우회 가족들. 사진 서울대병원

11일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환우회 가족들. 사진 서울대병원

주말인 지난 11일에도 산행이 이어졌다. 환우회 아이 41명과 부모 52명이 서울 도봉구 북한산 둘레길을 같이 걸었다. 환우회에서 활동하는 조병준(11)군은 “웬만한 산은 다 가봐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히말라야에 도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안상호 환우회 대표는 “심장병 어린이들이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하는 건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아이가 심장병이 있다고 하면 임신 때 아이를 포기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데,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유병률도 몰랐는데…“내년이면 분석 완료” 

배은정 서울대병원 교수가 환우회 측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의 연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배은정 서울대병원 교수가 환우회 측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의 연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이번 행사에는 특별히 의대 교수들이 동참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 교수 등이 응원에 나선 것이다. 배은정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등 소아 심장 전문 교수 6명이 둘레길 산행에 앞서 3시간 정도 환우회 가족을 위한 강연회를 열었다. 교수들은 완전대혈관전위·수정대혈관전위·폐동맥판막폐쇄 등 여러 선천성 심장병에 대한 수술·치료 방법이나 수술 전후 가정에서 환아를 관리하는 방법 등을 설명했다. 환우회 이지선(40대·여)씨는 “병원에서는 이 정도로 교수와 가깝게 이야기하기 힘들다”라며 “엄마가 (병에 대해) 아는 만큼 아이도 안다. 이런 기회로 평소 궁금했던 걸 알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도 소아 환자들의 병을 ‘더 알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심장 질환을 앓는 전국 소아 환자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복잡 심실 유출로 심장기형 코호트 연구 사업’에는 서울대병원 외 전국 21개 병원이 참여했다.

선천성 심장 기형은 1000명당 8~10명 정도가 발생하는데, 일부 질환은 세부 데이터가 따로 없어 그간 환아의 생존율이나 유병률, 합병증 발생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로 선천성 심장병 환아 성장에 따른 예후 등을 예측하게 될 전망이다. 사업단은 현재 환아 1200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배은정 교수는 “환자군에 대한 전국적인 임상 레지스트리를 구축하고 있다”며 “내년이면 현황 파악이 가능해져 어떤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지도 함께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상윤 서울대병원 소청과 교수는 “데이터가 쌓이면 아이들을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장기적인 건강 관리 체계 구축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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