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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의료 소외지 전남에 국립 의대 설립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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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지방자치분과 위원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지방자치분과 위원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추구권을 강조한다. 의료서비스는 교육·주택·문화서비스 등과 함께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최소 한도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와 관련해 ‘전국적으로 고른’ 의료서비스의 질 이슈가 국가 균형발전 이슈와 연계되면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근대 재정학의 창시자이자 대가인 머스그레이브는 교육·주택서비스와 함께 의료서비스를 대표적인 가치재로 제시한다. 가치재란 시장에서의 생산도 중요하나, 공동체 구성원들이 골고루 소비하는 것이 특징인 재화이다. 정부 등 공공부문이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평가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일컫는다.

전국 유일하게 의대 없는 전남
중증 응급환자 제때 치료 못해
지역민 위한 의료 서비스 절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최근 미국 행정학계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공공가치론의 대표적 학자인 무어와 보즈먼 교수는 정부 등 공공부문이 존재하는 근거로 ‘공공가치 창출’을 들고 있다. 특히 보즈먼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조직 외부의 환경이나 시민(지역 주민)과의 관계에서 공정성·형평성·반응성, 이해관계의 균형화 등의 공공가치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보즈먼은 공공가치 창출의 성공과 실패를 진단하는 기준으로 주요 공공가치 개념을 제시한다. 전국 시·도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라남도 주민들은 여러 공공가치에서 소외되고 있다.

첫째, 인간의 생존과 존엄이라는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보즈먼은 강조한다. 이는 미국 철학자 존 롤스가 가장 불우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혜택이 주어질 때 정의에 부합한다고 해석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전남의 경우는 노인 비율이 도민 4명당 1명꼴인 25%다. 전국 평균( 18%)에 비해 높다. 장애인 비중도 7.6%로 전국 평균(5.1%)을 웃돈다.

게다가 사람이 사는 전남의 섬(270여 개) 중 절반 이상(58%)인 160여 개 섬에 의사가 없다. 응급의료 취약 지역은 전국 98곳의 21%인 17곳으로 전국 최다이다. 전남은 노인이나 장애인 비중이 커 의료 수요는 큰 편이나 의료 접근성(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을 기회)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명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공급자가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느냐이다. 이는 필수 의료인력의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하느냐와 연관되는 가치이다. 전남의 경우 공공의료원 3개(목포·순천·강진)의 10개 진료과가 고액 연봉 제시에도 필수 의료인력을 구할 수가 없어 개점 휴업 상태에 있다. 또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의 부재로 골든 타임이 필요한 중증 응급환자의 다른 지역 유출률이 전국 최고인 50%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전남 주민이 지역 내에서 필수 의료서비스를 적시에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편익의 비축 여부이다. 특정 지역에 의료 인력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느냐 여부를 말한다. 의료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의사 10명 중 6명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도권 의대 졸업생 10명 중 8명, 광역시 의대 졸업생 10명 중 3명, 지방 의대 졸업생 10명 중 절반이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분석돼 의대 졸업생의 수도권 근무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수도권 지역 주민에 비해 비수도권 지역 주민이 상대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3가지 기준에서 판단해 볼 때 종래의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정책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서비스 불균형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지방화’ 시대를 천명하면서 지방에 ‘교육 특구’ 설립을 추진하여 지역 인재의 유출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지방에 ‘의료 특구’ 선정이라는 구체적인 정책이 곧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윤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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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지방자치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