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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성민이 소리내다

비행기 사고까지 부른 존댓말 문화…'이름+변형반말' 평어 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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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성민 작가,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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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특별한 존비어체계 때문에 수평적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축구 대표팀 감독이 팀원끼리 이름을 부르라는 지시를 하며 새로운 소통을 시도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한국어의 특별한 존비어체계 때문에 수평적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축구 대표팀 감독이 팀원끼리 이름을 부르라는 지시를 하며 새로운 소통을 시도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한국의 수직적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2부는 제목이 ‘유산’이다. 문화적 유산. 2부의 두 번째 글에서 글래드웰은 비극적인 대한항공 비행기 추락 사건을 다룬다. 그것은 이 유산의 결과였다. 비행기에 기장과 부기장이 있는 이유는 물론 비행기 안전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에도 위아래가 있는 한국의 문화에서 그런 안전장치는 소용이 없었다. 부기장은 제대로 말하지 못하였고, 기장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대한항공의 비행기 사고는 전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왔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된 데이비드 그린버그는 특단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대한항공의 공용어는 영어다. 만약 대한항공의 조종사로 남고 싶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말로 해결책이 됐다.

존비어체계로 수직 문화 고착 #거친 반말이 아닌 평어가 대안 #기업과 대학, 새 대화법 찾아야

한국말은 알다시피 높이는 말과 낮추는 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한국어학자 최봉영은 이를 ‘존비어체계’라고 불렀다. 호칭만이 아니라 말투도 높임과 낮춤의 체계적인 구별이 있는 말은 지구상에 한국어와 일본어 정도밖에 없다. 중국어에도 존비어체계는 없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조차 나이를 따지고 말을 달리하는 수직적 문화에 온통 찌들어 있다.

존비어체계에 의해 지탱되는 이 수직적 문화는 축구의 발전도 막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거스 히딩크는 그렇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그는 선수들에게 “대표팀의 공용어는 영어다”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상대방을 이름으로 부르고 반말을 사용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말 실험의 인상적인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히딩크호의 성공은 곧바로 기업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이름 호칭 + 반말’이라는 혁신을 도입하지는 못하였다. 영어식 이름 호칭을 도입하면서도 존댓말 사용은 유지하는 형태를 택했다. 하지만 상사에게 하는 존댓말과 동료나 후배에게 하는 존댓말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두 안다. 존댓말을 그대로 두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노인과 바다』의 대화는 노인 산티아고와 소년 마놀린 사이에서 이뤄진다. 기존의 번역은 “산티아고 할아버지!”로 시작하지만, 나의 번역은 “산티아고!”다. 마을의 둘도 없는 친구인 그 둘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대화. 소년의 존댓말과 노인의 반말로는 붙잡기 힘든 두 마음을 품은 대화다.

말 때문에 우리는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을 겪은 것일지도 모른다. 말 때문에 우리는 누릴 자격이 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을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사용하고 있다. ‘너’를 ‘너’라고도 부를 수 없고 나이가 조금만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이런 구조를 바꿔가야 한다. ‘이름 호칭 + 변형 반말’. 나는 이 새로운 말을 몇 년째 을지로의 한 디자인학교(‘디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나의 실험에 동의하는 그곳의 한 디자이너가 그것에 ‘평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금 평어는 디학의 공용어가 되어 있다. 그리고 디학을 벗어나 조금씩 퍼지고 있다. 평어를 사용하는 직장인들도 생겨났고, 평어를 사용하는 대학 수업도 생겨났다. 나는 이제 평어의 도입이 아니라 평어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평어의 존재와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이 경희대 학부 수업에서 평어를 사용하는 김진해 교수다. 강의의 모든 참가자들은 서로 반말을 쓴다. 학생들도 교수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다. 출석을 부를 때 “네.” 대신 “응!” 이라고 할 뿐더러, 수업이 끝난 후에는 “진해! 오늘 수업 잘 들었어.”라고 하는 식이다. 물론 반대 의견이 많을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거친 반말이 또래 관계 너머로, 전 사회로 확장되는 것을 그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평어란 거친 반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말에 없었던 새로운 말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평어를 구성하는 부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름 호칭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변형된 반말이다. 평어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성민아” “영희야” 같은 반말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령 “금방 성민이가 한 말은…”이라고 하지 않고 “금방 성민이 한 말은…”이라고 하는 방식이다.

‘이름 호칭 + 변형된 반말’은 새로운 결합이며, 실제로 사용하였을 때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디자인 신제품이 늘 그렇듯, 처음에는 낯설어도 곧 그 편리함이나 새로운 가치를 알게 해준다. 물론 평어는 반말이라는 기존의 말을 가져다 사용하기에 거친 반말로 흐를 위험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적합한 평어 대화를 개발하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비즈니스와 일상을 좀 더 편리하고 부유하게 만들어줄 대화의 모형을 풍부하게 만들면 한국의 수직적 문화를 깰 수 있다고 본다. 기업들도 새로운 언어 문화가 필요하다고 절감하고 있다. 이런 기업과 연구 기반이 있는 대학이 평어 대화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성민 작가·철학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