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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18년만 가자 재점령? 네타냐후 "전체적인 안보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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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재점령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할 경우 이는 2005년 9월 이후 18년만의 일이 된다.

 이스라엘 군 탱크가 가자지구를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 지상군 투입을 예고하며 대규모 포격을 지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 군 탱크가 가자지구를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 지상군 투입을 예고하며 대규모 포격을 지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이후 가자지구에 대한 통치 방식을 묻는 질문에 “이스라엘이 정해지지 않은 기간에 걸쳐 전체적인 안보책임을 가질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그런(직접 통치) 책임을 지니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봤다”며 “우리가 안보 책임을 가지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터진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하마스 테러였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가자지구를 직접 통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이는 그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각에선 중동 국가들을 자극해 ‘5차 중동전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스라엘의 역사는 1948년 5월 세계 각지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 들어와 건국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과 지속적인 전쟁을 치렀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을 비롯해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다만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국제 사회의 중재로 2005년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이 시작됐다. 그러나 철수 이듬해인 2006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에서 집권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지속돼왔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공습 이후 하마스를 궤멸시키기 위한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하마스를 공존이 불가능한 테러세력으로 규정하고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하마스 축출 이후 가자지구의 통치 여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스라엘 군이 발사한 포탄에서 발생한 섬광이 가자지구로 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이 발사한 포탄에서 발생한 섬광이 가자지구로 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자 점령이 자칫 이란 등 중동 국가를 자극해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우려를 알고 있던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도 지난달 20일 의회에서 “가자지구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밝혀 가자 점령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은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일각에선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원칙을 변경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총리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목적이 일시적 전쟁 중단 요청을 거부한 채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총리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목적이 일시적 전쟁 중단 요청을 거부한 채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익명의 관리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안보 책임을 갖지 않는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없을 것”이라며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언급과 동일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미 이스라엘 당국이 가자 점령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내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국제사회가 일시적 교전 중단을 요청했지만, “휴전은 없다”며 각국의 요청을 거부한 채 지상군 투입에 앞서 가자지구 내 450곳을 포격하는 등 사전작업의 속도를 높였다.

6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시신 앞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시신 앞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만 가자지구 내 민간인 사망자가 1만명을 넘어서자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전술적 교전 중단(tactical pause)’ 가능성을 논의한 뒤 “인도주의적 구호품의 반입과 우리 인질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상황을 점검할 것”이라며 인도적 차원의 작전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논의는) 시작 단계에 있는 상황”이라며 여전히 네타냐후 총리와 이견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쟁의 장기화는 물론 전후 가자지구 점령에 따른 추가 확전의 우려가 커지면서 유엔과 일부 서방 국가는 일시적 교전 중단을 넘는 ‘즉시 휴전’의 필요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휴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휴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가자지구가 어린이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며 휴전을 촉구했고,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도 X(옛 트위터)에 “전쟁으로 10분에 한 명씩 어린이가 죽고, 두 명이 다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세계보건기구(WHO)·국제이주기구(IOM)·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등도 공동성명으로 분쟁 중단을 요구했다. 스페인·프랑스는 휴전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에서 허가를 받고 일하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추방되는 과정에서 “불법 구금된 채 구타·고문·학대에 시달렸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CNN은 “이스라엘군이 우리를 발가벗기고 곤봉과 쇠몽둥이로 때렸다. 어떤 사람은 전기 고문까지 받았다”는 팔레스타인 출신 노동자 압둘라 알 라디아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학대 행위 일부를 시인하면서도 “공식 구금 시설 밖에서 일어난 군의 일탈 행위”라고 해명했다. 구금 중 죽은 2명에 대해선 “만성적 질병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6개 인권단체는 “노동자 구금은 법적 권한이나 근거가 없는 행위”라며 이스라엘 고등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이스라엘 내부에서까지 반인권 행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기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이스라엘 내부의 여론도 긍정적이지 않다. 이스라엘 싱크탱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전쟁을 이끌 지도자로서 네타냐후 총리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7%에 불과했다. 지난달 현지 매체 마리브의 조사에서도 이스라엘 국민의 80%가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의 기습을 막지 못한 안보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연구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한다는 것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대가 심해 현실적이지 않고, 특히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온 미국의 의사를 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가자 점령 언급은 정치적 위기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국내 정치용’ 구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4일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4일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이와 관련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후계자가 될 인물과 나눌 교훈에 대해 생각해 보라”며 직접 하야를 권고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백악관은 폴리티코의 보도를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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