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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않는 모기, 히말라야 점령했다…"50억명 말라리아"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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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모(32)씨는 지난주 매일 잠을 설쳤다. 방충망을 열지 않았는데도 몇 마리씩 나타나 무는 모기 때문이다. 박씨는 "살충제를 뿌리고 모기향을 피워도 소용없었다"며 "새벽이면 모기 탓에 잠을 깨기 일쑤라 불면증이 생길 지경"이라고 전했다. 그는 “모기가 두려워 창문을 꼭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며 "요즘 빈대가 전국에 퍼져 겁났는데 가을까지도 모기가 한창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곧 절기상 입동(立冬·8일)을 맞지만, 박 씨처럼 모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말라리아 환자가 500명을 넘어선 지난 8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모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라리아 환자가 500명을 넘어선 지난 8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모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 없는 모기'는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모기 전염 시즌(mosquito transmission season)’ 연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모기의 활동 기간이 늘어나고, 서식 지역도 한층 넓어지고, 개체 수까지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온난화에 히말라야에도 모기 출몰  

말라리아 백신을 맞고 있는 아이. AP=연합뉴스

말라리아 백신을 맞고 있는 아이.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모기가 창궐하게 된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고 있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 일대에서도 모기가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다.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높은 봉우리와 호수, 트레킹으로 유명한 돌파 지역은 해발 1500m~7500m인 히말라야의 외딴 고산지대인데, 여기서도 모기가 발견됐다.

해발 고도 약 2000m 인 고산 마을 두나이의 한 주민은 FP에 “놀랍다. 이전엔 이곳에 모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네팔 보건당국도 고산지대인 무스탕에서 지난 9월 뎅기열 감염자 3명이 보고되는 등 모기 매개 질병 환자가 늘고있다고 밝혔다. 히말라야는 지구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히말라야의 연평균 기온은 10년마다 0.32도씩 높아지고 있다.

'고도가 높은 곳엔 모기가 살기 어렵다'는 상식은 아프리카에서도 깨졌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모기의 서식 범위는 연평균 약 6.5m, 10년에 약 61m 이상씩 고지대로 확장하고 있다. 연구팀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열대 동태평양 표층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구 더워지자 활개 치는 모기

특히 올해는 가뜩이나 뜨거운 지구 탓에 모기가 번성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올해는 지구 평균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만큼 더웠다. 미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에 따르면 지난 9월 세계 평균 기온(16.44도)로 역대 9월 가운데 가장 더웠다.

더워진 지구는 모기에겐 천국이다. 변온동물인 모기는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섭씨 9도 이상이 돼야 날고, 13도 이상에서 흡혈한다. 25~27도 환경에선 알에서 성충이 되는 데 12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국내에선 지난달 따뜻한 날씨로 전달보다 모기 개체 수가 늘어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관내 디지털모기측정기(DMS) 50곳을 통해 채집한 모기 수는 10월 둘째 주에 약 933마리다. 9월 마지막 주(607마리)보다 오히려 1.5배가량 늘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지구 온난화는 모기의 활동 기간에도 영향을 준다. 비영리 연구기관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연간 모기 발생 일수는 1979년보다 평균 약 2주 정도 늘었다.

샌프란시스코·시애틀 등 10곳에선 약 40년 전보다 모기가 한 달 넘게 더 살았다. CNN에 따르면 미국 내 250개 지역 대상 연구에선 70% 이상의 지역이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했다.

말라리아 매개 모기인 얼룩날개모기. 중앙포토

말라리아 매개 모기인 얼룩날개모기. 중앙포토

韓, 말라리아 환자 급증…방글라데시, 뎅기열 사망 1000명 

모기가 늘자 모기 매개 질병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WP는 2040년이 되면 세계 인구 예측치(약 90억 명)의 절반이 넘는 50억 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말라리아는 2000년대 들어 치료법이 개선되고 살충제가 보급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발병률과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해 한때 '후진국 병'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온난화와 함께 제3세계는 물론 선진국도 위협하고 있다. 올해 미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 등에선 20년 만에 지역 내 말라리아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말라리아 환자가 늘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 14일까지 집계된 말라리아 환자는 719명으로, 2011년 이후 12년 만에 한해 700명을 넘어섰다.

국내에서 모기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석좌교수(이학박사)는 중앙일보에 “기후 변화로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의 활동 기간이 늘어났다. 또한 이들 매개 모기가 북한에서 따뜻한 환경을 찾아 넘어오는 상황도 환자 증가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뎅기열의 확산에 비상이 걸린 나라들도 많다.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 세계 79개국에서 뎅기열 감염자가 420만 명 발생해 이 중 3000명 넘게 사망했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에선 올해 1~9월 동안 뎅기열 환자가 20만 명 넘게 발생하고 1006명이 사망했다. 1~9월에 발생한 사망자 수가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뎅기열로 숨진 사람 수보다 많다. 남미 페루에선 역대 가장 많은 뎅기열 환자가 발생해 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보건장관이 사임했다. 올해 들어 6월까지 14만 6000명의 뎅기열 환자가 나왔고, 이 중 248명이 숨졌다.

한국도 더는 뎅기열 안전지대가 아니란 우려도 나온다. 국내에도 뎅기열을 매개하는 흰줄숲모기가 서식하고 있으나, 아직 뎅기열 바이러스가 있는 흰줄숲모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동규 교수는 “2050년대가 되면 한국의 한겨울인 1월 기온이 평균 10도 이상 된다는 관측인데, 이 경우 흰줄숲모기가 성충으로 겨울을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에서 뎅기열에 걸려온 환자를 흡혈한 모기가 성충으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 독해진 모기…살충제 저항성 생겨 

과거보다 모기들의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진 것도 '대유행'의 원인 중 하나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살충제를 쓰는 환경에선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모기 중 화학물질에 강한 유전자를 가진 모기의 생존율이 높다.

이 과정이 몇 세대 반복되면 몇 배 농도 더 독한 살충제에도 잘 죽지 않는 모기가 나타난다. 실제로 올 초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연구 결과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의 80% 이상이 널리 쓰이는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일각에선 유전자 조작 등을 활용해 모기를 '개량'하거나, 아예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 교수는 “모기가 사라져도 모기를 대신할 다른 생물들이 많긴 하지만 모기의 엄청난 번식력을 고려할 때 박멸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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