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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오를수록 배 두둑한 은행…정치권선 횡재세 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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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은행에 대한 강한 비판 발언을 쏟아내면서, 후속 대책을 놓고 금융당국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 초과 이익을 세금으로 다시 거둬들이는 ‘횡재세’ 도입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은행들은 소상공인의 금리 부담을 낮추자니 정부의 대출 억제 기조에 어긋나게 돼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2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엄중하게 느낀다”면서 “이미 발표했던 개선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고, 또 다른 개선점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소상공인의 발언을 소개했다. 또 1일 서울 마포구 한 북카페에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한국의 은행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은행 때리기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은 고금리로 은행이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하자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 위화감이 생기지 않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금융위원회 주도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대구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등 대책이 나왔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은행 비판 수위는 줄지 않았다. 특히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3분기 누적 이자이익(30조9366억원)이 처음 30조원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를 또 경신하면서, 이전보다 더 센 대책을 주문하는 압박이 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야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횡재세 도입 가능성까지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이디어 중 하나로 횡재세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횡재세란 특정 산업군에 과도한 이익이 발생할 때, 세금으로 이를 환수하는 제도다. 법으로 적정 이익 수준을 미리 설정해 두고, 이를 넘으면 세금을 더 걷는 방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값이 많이 치솟은 유럽에서는 에너지 기업의 과도한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 도입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스페인과 헝가리 등에서는 은행까지 횡재세 부과를 확대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가 1년간 은행의 순이자수입의 40%를 횡재세로 부과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횡재세를 부과하면 부족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득을 재분배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횡재세가 사실상 가격 상한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은행의 효율적 경영을 막고,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문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에 물린 횡재세가 언제든 다른 기업으로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지고,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법을 개정하는 횡재세 보다는 은행에 일시적으로 재원을 출자받아 서민금융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연말쯤 서민금융지원 강화 대책 내놓을 방침이다. 다만,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까지 나서 보다 확실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어 은행권 초과이익 문제가 횡재세 논의로 급선회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았다.

은행권은 윤 대통령의 은행 비판을 소상공인 등의 대출 이자 부담을 줄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다. “은행이 자기 잇속만 채우지 말고 서민들의 금리 고통을 줄여줘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는 해석이다. 이를 위해선 당장 금리를 내리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채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는데, 상생을 주문하는 메시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일 소상공인·자영업자 이자 부담이나 가계 원리금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금융권 수신 경쟁 관련한 지표를 면밀하게 살피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고금리 예금 재유치를 위해 금융권의 수신 경쟁이 심화해 대출금리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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