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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이빨 빠진 사람 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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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요즘 여권의 위기를 둘러싸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최근 가장 귀가 솔깃한 얘기는 “누구 이빨 빠진 사람 있다는 소리 들었냐”는 말이었다. 과거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이빨이 다 빠질 정도로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하지 않았냐”며 “나도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이 까맣게 됐을 정도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는 사람을 듣지를 못했다”고 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고위직이 들으면 정말 화났을 얘기다. 그런데 원래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남이 잘 모르는 법이다. 물고 빨고 키운 자식도 부모에게 “내 마음도 모르면서!”라고 소리치는 판에 남이 어떻게 내 고생을 이해하겠나.

서울 용산에 위치한 대통령실 청사 전경. [연합뉴스]

서울 용산에 위치한 대통령실 청사 전경. [연합뉴스]

중요한 건 그런 미담조차도 없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 도중 코피를 흘렸다는 얘기는 알려졌지만 어떤 참모가, 장관이 코피 흘렸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특히나 요즘처럼 다들 “경기가 안 좋아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 판이면 최상목 경제수석 같은 분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퇴근도 안 하고 날마다 경제 상황을 챙기느라 생일날도 집에 못 갔다”는 미담 정도는 제조돼야 하는 게 아닌가.

인사 문제도 그렇다. 참사 수준의 낙마 사태가 벌어져도 도무지 태평하다.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기 전날인 지난달 1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검증 부실을 따지는 야당 의원에게 “프로토콜에 따라서 자료를 수집하는 역할까지만 합니다, 기계적으로”라고 답했다. 정말로 기계적인 답변이었다.

기계적인 건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기까지 국민의힘은 과연 야당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했을까 싶다. 아무리 미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라도 찾아가서 어르고 달래고 해야 했던 거 아닌가. 그래놓고 예상대로 부결되자 “윤석열 정부 발목잡기”라는 기계적인 구호를 외쳤다. 보궐선거 참패로 내년 총선에 빨간불이 켜졌는데도 윤 대통령이 “차분한 변화”를 강조하자 모두들 쳇바퀴 돌아가듯 기계적인 단합으로 마무리했다.

앞서 언급한 인사는 “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느냐? 책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오롯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으면 지금처럼 일하는 분위기는 없었을 것이란 진단이다. 중요한 건 누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든 자리보전만 하는 사람은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왕 기계적인 김에 칼럼도 기계적으로 마무리한다. 여권의 분발을 기대한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