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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야당 의석 돌며 악수에 “부탁한다” 다섯 차례…늘 이랬으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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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의 사전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기자협회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의 사전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기자협회

윤 대통령, 이재명 대표 먼저 호명에 ‘도와달라’ 표현도

야당 측과 자주 통화·식사로 민생 협력 이끌어내 주길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내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연설 시작부터 여야 순으로 호명하던 관례를 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이정미 정의당 대표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님’ 순으로 야당 대표들을 앞세우며 예우를 갖췄다. 민주당이 보이콧했던 지난해 시정연설에선 ‘의원 여러분’이라고만 했었다. 물가와 민생 안정을 정책 최우선에 두겠다는 등 국정 방향도 설명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이런 스타일 변화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윤 대통령도 시선을 주지 않으며 지나쳤던 지난해와는 다른 장면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사전 환담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를 만나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악수했다. 대선 이후 두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소통하는 자리를 함께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 이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윤 대통령과 악수했다. 연단을 향하는 도중에도 윤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연설 내용 역시 지난해와 사뭇 달랐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청년의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에 함께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는 식으로 정치권을 향해 부탁드린다는 표현만 다섯 차례 썼다. 야당 등을 향해 도와달라고도 했다. 지난해엔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정도였다. 윤 대통령은 연설이 끝난 뒤 먼저 야당 의원석을 돌며 일일이 악수를 건넸다. 협치의 기대와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이 몸을 낮춘 것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영향일 것이다.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예산안 처리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정 책임자가 협조를 구하려는 자세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제 연설에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한 대로 야유 등이 나오지 않았지만, 일부 야당 의원들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노출했다. 악수를 건네는 윤 대통령을 못 본 체하거나 앉은 채로 ‘노룩 악수’를 한 민주당 의원들도 있었다. 김용민 의원은 악수를 청하길래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했다고 스스로 공개했다. 민심의 회초리가 언제 자신들에게 향할지 모르는 근시안이자 오만이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거나 비교하는 내용은 연설에서 빼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임기 1년 반이 지난 시점의 바람직한 태도다. 앞으로도 평소 야당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 전화도 걸고 식사도 하며 이견을 좁히고 민생을 위한 공감대를 끌어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머물러 있지 않은 민심은 누가 먼저 변하는지, 누가 진정 민생을 위해 애쓰는지 알아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