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차 뚜렷… 「결실」엔 실패/남북 총리회담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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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 노골적 비난·「기자 반칙」… 분위기 경색/미군 철수 겨냥… 내년 팀스피리트 트집
12,13일의 제3차 남북 고위급회담 전체회의는 1,2차 회담보다 양측의 노선차이를 훨씬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합의서」를 향한 접근방법도 다르지만 양측은 상대방의 국가경영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유감없이」 터뜨렸으며 여기에다가 북측 기자단 무단 숙소이탈 등 북측의 반칙까지 겹쳐 회담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굳었다.
때문에 양측은 비공개로 열린 13일 최종 절충회의에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으며 조그만 공약수라도 찾아 소규모 남북 공동발표라도 만들어 보자는 우리측의 노력도 북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양측은 차후 회담일정을 논의,일단 4차 회담까지는 양측이 「왕래 계속」을 합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측의 공격적 자세로 비추어 볼때 내년 1월말 시작되는 팀스피리트훈련을 트집잡아 북측이 일정기간 회담중지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북한의 반발이 제한적이며 국제정세의 대세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대화테이블에 앉게 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측의 의견을 수용한 양 「북남 불가침선언과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을 새로운 카드로 내놓았다.
외견상으로는 얼핏 우리가 비중을 두어온 교류·협력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총리의 기조발언·안병수 대변인의 기자회견 등에서 나타난 북측의 계산은 주한미군 철수·한반도 비핵지대화 등의 불변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수사학적 변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그동안의 우리측 태도에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공격하고 나섰다.
예컨대 남한이 「힘의 우위」를 위해 신형무기를 대대적으로 도입하는등 95년까지 군비증강을 계속할 태세이고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현실적인 위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은 또 남측이 불가침선언을 반대하는 것은 미군을 계속 붙잡아 두려는 외세의존적 사고방식 때문이며 노태우 대통령 방소를 빗대 「외국을 돌아다니며 청탁이나 하는」 북방외교도 같은 맥락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북한이 1,2차 회담과는 달리 주한미군 문제를 노골적으로 들고나온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안대변인은 『불가침선언이 채택되면 북남 군축이 실현되어야 하고 이어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논리이자 상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측은 북한의 이같은 태도로 보아 대남 혁명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침선언이란 더욱 「빛좋은 개살구」격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불가침선언이 효력을 가지려면 ▲군사정보 및 군인사 교환 ▲군사연습 사전통보와 참관 허용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현장검증단과 상주감시단의 교환운영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측은 히틀러가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과 스탈린이 맺은 소일 불가침조약이 있었지만 독일과 소련은 각각 이를 헌신짝처럼 버렸고 북한도 불가침선언에 버금가는 7·4공동성명에 도장을 찍고서도 버마 아웅산테러·KAL기 폭파 등 무력도발을 자행한 「전과」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나타난 북측의 공격성과 경직성은 북한이 봉착한 「이중상황」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대외적으로 대화지속이라는 이미지 구축을 위해 회담에 참여했지만 대내 체제 결속을 위해선 남측 정부를 「외세에 의존하는 반통일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전민련등을 민간 통일주도세력으로 부추기겠다는 양동작전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측 임동원 대변인의 기자회견에서 북측의 로동신문 기자는 『노대통령이 독일과 같은 남북통합에 대비하라고 했다는데 한반도에서도 흡수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연총리는 기조연설에서 『남측이 힘의 우위를 노리고 있다』고 한 사실은 북측이 국력의 열세에 조급해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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