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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 의대 나와서 정치 입문…33세에 부시장 등극한 中 스펙 끝판왕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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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중국 쓰촨성 남부의 이빈(宜賓)시에서 한 여아가 태어났다. 이름은 천난(陳楠). 어려서부터 명석했고 부모님을 걱정시키는 일이 없어 소위 ‘엄친딸’로 통했다. 학창 시절에도 수재로 지역 내에서 유명했던 천난은 목표가 뚜렷했다. 이타심이 강했던 그는 생명을 구하고,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를 꿈꿨고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 의과대학(병리학 전공)에 입학한다. 칭화대 의대는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THE가 평가한 2023년 세계대학평가 의학부문 순위에서 5위에 오를만큼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명문이다.

중국 쓰촨성 펑저우시 부시장 천난. 바이두바이커

중국 쓰촨성 펑저우시 부시장 천난. 바이두바이커

그는 인턴 시절, 환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직시하며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180도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수년 간 공부하고 매진해온 의료계에 종사하는 대신 ‘공무원’이 되기로 선택한 것. 주변인들은 “부모 뒷바라지가 수포로 돌아갔다”거나 “지금껏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했다”며 천난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 어려서부터 배움과 발전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천난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려는 마음을 실현하고자 했다.

꿈을 이루기로 결정한 천난은 2017년 중국의 공무원 시험인 궈카오(國考)에 응시했고 단박에 합격한다. 그때 나이 스물 일곱. 정치에 대해 모르던 의학도는 3년 간 지방의 끝단으로 내려가 ‘지방 행정’을 경험하게 된다.

쓰촨성 청두시 진탕현. 현은 중국행정구역단위로 시 아래 급이다.

쓰촨성 청두시 진탕현. 현은 중국행정구역단위로 시 아래 급이다.

업무를 처리하는 태도와 명석함 덕분에 천난은 2020년 쓰촨성 청두시 진탕현 좐룽진(轉龍鎮)의 당위원회 부서기로 승진한다. 대부분의 공직자가 평생 일해도 이르기 힘든 직위를 서른에 꿰찬 것. 진은 중국의 구(區) 바로 밑 행정단위로 한국의 ‘읍면동’ 정도인데, 천난이 이끄는 좐룽진은 13개의 촌(村)에 5만 8000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며 민관 협력이나 행정에 있어 복잡한 사안이 많은 지역이다. 특히 3개 촌은 농업에만 의존해 있어 재정 상태도 심각했다.

천난은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지역 안보에 몰두했다. 지역 내 공안 및 기타 기관 책임자와 협력해 200명 이상의 인력을 조직해 좐룽진 마약 퇴치 활동을 수행했다. 야간 순찰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후 좐룽진의 범죄 사건 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농촌 지역 활성화에도 공헌했다. 고대 도시의 원형이 보존된 신창진(新場鎮)을 관광 명소로 탈바꿈하고, 좐룽진을 생태 관광 벨트로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또 현지 실정에 맞춰 가금류 무역, 가공, 물류를 통합하는 현대식 농업 산업 단지 건설을 추진해 상사 관료로부터 능력을 인정 받았다. 빈곤 지역의 경우 매년 수만 마리의 돼지와 토끼를 사육할 수 있도록 조성했으며 한약재를 선도 산업으로 삼아 산업 사슬을 형성했다. 지역 내 교육 환경 개선에도 앞장섰다. 모든 정책은 지역민의 생활 수준 개선과 소득 증가로 귀결됐다.

중국 정치인 천난. 바이두

중국 정치인 천난. 바이두

코로나19 당시 관계 기관을 둘러보는 천난. 바이두

코로나19 당시 관계 기관을 둘러보는 천난. 바이두

천난이 이 기간에 보여준 행보는 그가 민생을 돌보는 업무에도 충분한 역량을 갖췄음을 증명했다. 그 결과, 천난은 2021년 9월 펑저우시 부시장에 부임하게 된다. 공무원 시험을 친 지 5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부시장 부임 후 천난은 병리학 전공의 강점을 활용해 팬데믹 기간 중 의료 자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시장 감독, 식품 및 의약품 안전, 보건, 의료 보안 등 다양한 업무를 열정적으로 처리하며 지역 주민과 상관들에게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천난의 초고속 승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인사는 중국이 사회주의 현대화를 국가전략으로 확정한 이후 시행해 온 중국 간부 정책의 일환이다. 중국은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젊은 간부들을 발굴해 지방 현장에 배치한 후, 경험을 쌓고 성과를 평가해 과감하게 승진시키는 관행을 갖고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풀뿌리 단계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갈 기회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젊은 간부들은 민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목격하며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만 29세가 되기 전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부서기에 보임했다. 이듬해 하반기에는 정딩현 현위원회 서기에 오르며 ‘정딩현 역사상 가장 젊은 서기’가 됐다. 이후 시진핑은 모든 수준의 공산당 직급을 거치며 광범위한 경험을 축적했고, 2012년 말에 당 최고 직책에 선출됐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BRICS 국가 기자들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재상은 반드시 주부(州部·고대 중국의 지방 행정조직)에서 나오고, 맹장은 반드시 병졸에서 뽑는다(宰相必起于州部,猛將必發于卒伍)”는 말을 소개하며 고위 관료가 되려면 반드시 지방에서 단련돼야 함을 강조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천샤오화, 장치우, 모차이화. 바이두바이커

왼쪽부터 차례대로 천샤오화, 장치우, 모차이화. 바이두바이커

중국은 당국의 정치체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와 엘리트 능력주의를 결합한 합리적 통치 시스템’이라고 자평한다. 중국 지방 조직의 말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정치인은 천난뿐만 아니다. 바링허우(80後, 80년대 이후 출생자)와 지우링허우(90後, 90년대 이후 출생자)가 젊은 간부가 중국 지역 사회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1990년생으로 중산대학 물리공학기술대학원에서 광정보과학 기술학사 학위를 수료한 천샤오화(陳曉華)는 2021년 광시성 베이하이시 톄상강구(鐵山港區)의 구장(區長, 구청장에 해당)이 됐다. 칭화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1987년생 장치우(張琪)는 2021년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화이라이현(懷來縣)의 부서기 겸 현장에 부임했다. 런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1990년생 모차이화(莫彩華)는 2021년 푸젠성 싼밍시 칭류현(清流縣)의 부서기 및 현장에 부임했다.

임서영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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