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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황금알 HBM…그 뒤엔 ‘10년 뚝심’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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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SK 하이닉스의 반도체 승부수

SK 연구

이천 호프집 5곳을 빌렸습니다. 늦게까지 맥주잔을 기울였습니다. 2012년 SK하이닉스 출범 뒤 최태원 회장이 선보인 ‘스킨십 경영’입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서도 “어떻게 화장실 한 번 안 갈 수 있을까” 직원들이 놀랐답니다. 그만큼 자리를 안 뜨고 소통한 것이지요.

중국 사업장 방문한 최태원 SK 회장

중국 사업장 방문한 최태원 SK 회장

“커다란 호수 주변에 아이들이 둘러앉아 누가 먼저 뛰어드나 서로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호수에 뛰어들면 시원하고 재미있을 것 같지만, 누구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규제 SK하이닉스 담당은 10여 년 전,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세상에 나오기 전 반도체 업계 상황을 이같이 비유했다. 당시 D램 미세공정 난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20나노급 D램을 4단으로 쌓은 HBM 개발에 성공한다. 모두 주저할 때 가장 먼저 호수에 뛰어든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시장점유율 50%로, 삼성전자를 뛰어넘었다. ‘메모리 왕국’ 삼성으로선 자존심을 구겼다. 글로벌 HBM 시장은 올해 20억 달러에서 2027년 52억 달러, 2028년 63억 달러로 연평균 10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성능 메모리인 HBM 탑재가 필수적이어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SK그룹에 편입되기 전인 2009년 하이닉스반도체는 ‘TSV기술개발팀’을 만들었다. TSV(Through Silicon Via)란 D램 칩에 수천 개 미세한 구멍을 뚫어 상·하단 칩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한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제품이 HBM이다. 이 팀은 TSV 기술뿐 아니라 HBM과 2개 이상의 IC칩을 수직으로 쌓는 3DS D램도 함께 연구했다. 2010년 미국 AMD와 HBM 개발 구상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제품화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개발 비용이 비싸고 생산 공정이 어려워서다. 사내에서는 “채산성이 크지 않다” “개발비도 건지지 못할 것” 같은 부정적 의견이 제기됐다. 이때 SK가 그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했다. TSV 기술력은 있지만 HBM 제품 개발에는 큰 진전이 없던 상황에서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당시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과외’를 하면서 하이닉스 인수에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2013년 SK하이닉스가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HBM은 당시 업계 최고속 제품인 GDDR5(그래픽 D램)보다 4배 이상 빠르고 전력 소비는 40% 이상 낮췄다.

그런데도 한동안 HBM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1024개나 있는 정보출입구가 문제없이 작동할지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다. 2015년 6월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에서 열린 E3 게임쇼에서 “HBM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그래픽 카드”라며 신제품을 소개하자 의구심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2016년 내놓은 2세대 HBM(HBM2)은 실패작으로 꼽힌다. 무리한 기술을 적용해 고객이 원하는 성능과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당시 D램 제품설계그룹장을 맡았던 전준현 담당은 “직원들 사이에서 HBM개발팀은 ‘아오지탄광’으로 불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회사는 HBM을 포기하지 않았고, 2019년 HBM2E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4세대 HBM(HBM3), 5세대 HBM(HBM3E)을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회사의 내년 영업이익은 4조1600억원 규모, 이 가운데 HBM이 2조6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변수는 있다. 선두를 빼앗긴 삼성전자가 추격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4분기부터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해 왔다. 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내년 엔비디아 HBM3의 30%를 공급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와 내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46~49%로 비등하게 시장을 양분할 것으로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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