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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스타들이 뮤지컬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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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린 병원 동기예요. 교통사고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최수종씨를 비롯해 탤런트들이 많이 찾아오더군요. 병원에서는 저, 강원래 방문객인 줄 알았겠죠. 김영진 형 찾아온 줄 모르고 말이에요."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해 있던 가수 강원래(38)씨와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실려온 드라마 '야망의 전설'의 감독 KBS 김영진(47) PD는 2001년 2월께 병원에서 만났다. 가요와 드라마 부문에서 각각 최고를 달리던 두 사람은 교통사고라는 똑같은 이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가슴 아픈 인연으로 병원 동기동창이 된 이들이 작품 하나를 만든다. 자신들처럼 사고로 장애를 당한 중도 장애인의 이야기 '뮤지컬 위드 러브'다.

작품은 뮤지컬 배우가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재기에 성공한다는 이야기. 이들은 각각 감독과 안무를 맡는다. '뮤지컬 위드 러브'는 '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분위기만큼은 밝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장애를 불쌍하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싫어서라고 했다.

김 PD의 안무 제의에 두 말 않고 하겠다고 나선 강씨는 "휠체어 춤 안무를 대한민국에서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저 말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휠체어 타면서 힘든 과정을 정상인 배우에게 가르쳐 주기도 해야 하고요"라고 설명했다.

역사.사회성 있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던 김 PD지만 이번 뮤지컬을 기회로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강원래씨를 두고 "발라드 가수를 하면 될텐데 댄스로 재기한다고 하니 힘들겠다"며 농담을 던진 뒤 "그래서 더 예쁘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강씨도 "무엇보다 누가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줘 즐겁다"고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년 2월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 4~5월께 막을 올릴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숨은 주인공이 있다. '최진실 목소리'로 이름이 알려진 성우 권희덕(51)씨다. 권씨는 김 PD와 드라마 예고편 녹음을 인연으로 1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사이. 권씨는 "김 PD가 사고당한 뒤 복직하고 나서도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훌륭한 연출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작을 맡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뮤지컬 아이디어도 권씨가 먼저 냈다. 대본은 드라마 '명성황후' '신돈'의 작가 정하연씨가 맡았다. 가수 조영남.이동원.심수봉씨, 코미디언 이상해씨와 김영임씨 부부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와 기업체 인사들이 후원의 밤 행사에서 '홍보대사'로 나설 예정이다. 권씨는 특히 "공연 수익금은 장애우 전용 사우나를 짓는데 쓰고 싶다"고 밝혔다. "사우나를 가려고 하면 문앞에서 쫓겨나기 일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날씨라도 안 좋으면 몸도 더 찌뿌드드할 텐데 사우나도 못 가면 얼마나 갑갑하실까요. 그런 분들을 돕는 자원봉사자가 많이 나타날 것이라 믿어요."

29일 오후 5시30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후원의 밤 행사를 열고 하이라이트 세 곡을 소개할 '뮤지컬 위드 러브'는 이미 이들의 작은 사랑이 뿜어내는 향내로 훈훈하다.

홍수현 기자<shinna@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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