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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혼란 틈타 레드라인 넘보는 푸틴…핵실험금지조약 비준 철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종교 지도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종교 지도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상원에서 25일(현지시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안을 철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앞서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고 위협해온 러시아가 국제 비확산 체제에서 이탈하며 위기를 고조시키는 모양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상원은 찬성 156표 대 반대 0표의 만장일치로 CTBT 비준안 철회를 가결시켰다. 앞서 하원인 두마도 18일 만장일치로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최종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놓게 됐다.

CTBT는 1996년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국제 핵 비확산 체제의 여러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로 마련됐다. 지상, 수중, 지하 등 모든 곳에서 모든 주체에 의한 핵폭발 실험을 금지하는 게 골자다. 핵 보유 5개국(미·러·영국·프랑스·중국)을 비롯해 원자력 발전 기술 등을 보유한 44개국이 서명·비준까지 마쳐야 발효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44개국 중 한국(1999년)과 러시아(2000년) 비롯한 36개국 외에 미국과 중국·인도 등 8곳은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도 44개국에 들어있지만, 북한은 CTBT에 대한 서명·비준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플레세츠크의 우주 비행장에서 야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플레세츠크의 우주 비행장에서 야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에 “CTBT 비준을 하라”며 압박해왔다. 그랬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비준안 철회’라는 카드를 뽑아 든 셈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같은 ‘극약 처방’에 비해선 저강도 시위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올초 푸틴 대통령이 미·러의 핵무기 통제 체제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 데 이어 러시아가 또다시 비확산 기조에서 이탈하는 신호를 보냈다는 의미가 있다.

단 이번 비준안 철회는 CTBT 비준을 하지 않은 미국에 상응하는 차원일 뿐, “핵 실험을 우리가 먼저 재개하는 일은 없다”는 게 러시아의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이뤄진 러시아군의 육·해·공 핵 억제력 훈련을 화상으로 참관하기도 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군은 모스크바 북동부의 플레세츠크 우주 비행장에서 야르스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고, 바렌츠 해상의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 툴라에서 시네바 탄도 미사일을 쏘는 훈련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훈련이 “침략자의 대규모 핵 공격에 대비한 리허설”이라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러시아 국방부가 “전장에서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육군전술미사일체계) 두 발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최대 사거리 300㎞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는 우크라이나의 전력을 대폭 강화하는 ‘게임 체인저’로 꼽혀왔다. 러시아군은 이외에도 S-200 대공 미사일과 미국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2기를 요격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올여름 대공세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이번 겨울은 또 한차례의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별도 성명을 통해 “오늘의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기회가 더욱 적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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