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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사람은 다 샀다?…전기차 시장, 한국만 '깔딱고개' 걸렸다

중앙일보

입력

40대 직장인 김학균씨는 최근 내연기관(ICE) 차량을 샀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영업사원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결국엔 내연기관 차를 선택했다. 그는 “충전 편의나 다른 여러 가지를 생각하니 전기차를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전기차(EV) 대신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5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에서 팔린 전기차는 11만500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는 7.5% 늘어났다.

최근 열린 기아 EV데이에서 시장 전망 등을 설명 중인 기아 송호성 대표. [사진 기아]

최근 열린 기아 EV데이에서 시장 전망 등을 설명 중인 기아 송호성 대표. [사진 기아]

얼리어답터 이미 다 샀다 

내수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 부진을 놓고 자동차 업계 내부에서는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구매에 긍정적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들은 이미 웬만히 전기차를 산 반면, 일반 소비자(mass majority)들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인다는 얘기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최근 ‘기아 EV데이’에서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얼리 어답터들이 구매하는 단계이며 일반 소비자층이 구매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일반 소비자층의 관점에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전기차의 높은 가격과 충전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더 큰 관심을 두게 하려면 관련 인프라 확충이 우선해야 하는데,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로 충전 불편과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을 꼽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41% 성장 

내수 시장이 주춤한 사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날 시장조사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판매량은 870만3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41.3% 늘었다. 글로벌 시장의 경우 전기차 판매가 이제 초기 단계인 만큼 빠르게 판매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내수와 글로벌 시장 간 판매 속도 차이는 자동차 업계에는 풀어야 할 숙제다. 그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안정된 내수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점유율을 늘려온 점에서 더 그렇다. 실제 기아는 최근 준중형을 중심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대거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실수요자가 가장 많은 준중형 이하 차종에 전기차를 ‘확실히’ 보급하지 않고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잡초와 쓰레기 가운데 수백 대의 전기 자동차가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블룸버그

잡초와 쓰레기 가운데 수백 대의 전기 자동차가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블룸버그

GM 등 완전 전동화 시점 늦춰 

사실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기대만 못 한 건 완성차 업체들이 당초 예상만큼 전기차 시장 확대에 적극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00년 넘게 내연기관을 다듬어 온 기존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빠른 ‘전기차 전환’이 반드시 이익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전기차 인프라 부족 역시 빠른 전환을 망설이게 하는 한 이유다.

최근 “북미에서 2025년까지 전기차 100만 대를 생산하겠다”고 밝힌 GM은 완전 전동화 시점을 2035년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당초 계획했던 ‘2030년 완전 전동화’에서 5년 뒤로 미룬 것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자동차 업체들 역시 내심 '완전 전동화'에 미온적인 입장인 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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