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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이스라엘 경제…통화가치 8년 만에 최저, 관광객 급감

중앙일보

입력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섬멸에 나서는 등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이스라엘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이스라엘 통화 셰켈은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국가신용등급은 하향될 처지다. 동원령에 따라 예비군 36만명이 소집돼 각종 기업의 인력이 모자라는 한편 시민들이 집에만 머물러 식당·술집 등이 문을 닫고, 여행객은 급감하는 등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난 15일 가자지구 경계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지상전에 대비해 36만명의 예비군을 동원하면서 이스라엘 기업에선 인력이 모자란 상황이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난 15일 가자지구 경계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지상전에 대비해 36만명의 예비군을 동원하면서 이스라엘 기업에선 인력이 모자란 상황이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통화 셰켈, 8년 만에 최저치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통화 셰켈은 직전 거래일보다 0.2% 하락한 달러당 4.0649로, 지난 1984년 이후 39년 만에 최장기간인 11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주엔 한때 달러당 4셰켈 아래로 떨어지면서 8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10년 만기 달러 채권도 8일 연속 하락했다.

앞서 수일 전에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와 무디스 등은 하마스와 무력 충돌이 격화할 경우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피치는 A+, 무디스는 A1 등급을 이스라엘에 부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75년 동안 잦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 등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신용등급을 강등당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러나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올해 정부가 추진한 '사법 개혁'으로 혼란이 거듭되자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있다고 연달아 경고 신호를 보낸 적 있다. 이제 전면전에 치달을 상황에 오면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날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4.75%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전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거나, 셰켈화 가치 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안 중에서 고민하던 중앙은행이 사실상 후자를 택해 금리를 동결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측은 이번 전쟁 여파로 올해와 내년 경제 성장이 급격히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이스라엘의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3%로, 내년에는 기존 3.0%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국방비가 늘어나고, 전쟁으로 운영이 중단된 기업과 대피한 민간인 등을 지원하기 위한 지출이 증가하면서 재정 적자 역시 급증할 것으로 봤다.

다만 2000억달러(약 270조원)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약 60%)이 비교적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나은 기반에서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짚었다. 아미르 야론 이스라엘은행 총재도 "우리는 과거에 어려운 시기에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도 "전쟁이 길어지고 확전이 되면 경제 전망에 불확실성이 더해질 것"이라고 했다.

식당·술집 문 닫고 관광객 급감

하마스와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관광객이 급격히 줄면서 지난 22일 이스라엘 북서쪽 항구 도시 아크레에 많은 배가 항구에 남아 있다. AFP=연합뉴스

하마스와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관광객이 급격히 줄면서 지난 22일 이스라엘 북서쪽 항구 도시 아크레에 많은 배가 항구에 남아 있다. AFP=연합뉴스

실물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FT에 따르면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하면서 식당과 술집 등이 개점 휴업상태다. 이스라엘행 항공편도 대거 취소되면서 관광객도 뚝 끊겼다. 예비군 36만명이 소집되면서 기업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 사업가 제레미 웰펠드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과 양조장이 망할 위기라고 FT에 전했다. 매일 수천 명의 고객이 찾아오던 식당 14곳 중 12곳과 양조장 문을 닫았다. 그는 "그나마 열려 있는 한 식당 손님은 단 5명으로,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면서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업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한탄했다.

전통적인 성수기(10~12월)가 시작된 관광업도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 관광가이드협회의 가닛 펠렉 회장은 "전쟁 우려로 앞으로 최대 2년까지 일부 투어가 취소됐다"며 "마치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택시기사인 니나 미즈라히는 "일주일에 20~40명 손님이 타는데, 지난주엔 평균 1명만 태웠다"며 "일이 너무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스라엘 투자회사 프사고트의 가이 베이트-오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06년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약 한 달간 전쟁했을 때보다 이번 전쟁 여파가 더 클 수 있다"면서 "장기전이 된다면 이스라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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