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푸른 눈의 한국인’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23일 임명됐다. 국민의힘이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지 12일 만이다.
위원장 구인난을 겪으며 난항을 겪던 국민의힘 혁신위는 인 위원장의 합류로 힘겹게 첫 발을 떼게 됐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인 위원장 발탁 소식을 전하며 “혁신위는 전권을 가지고 자율적·독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당의 살림을 책임지는 이만희 사무총장은 당사에서 인 위원장을 만나 혁신위 구성과 권한 등에 관해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면담 뒤 기자들과 만난 인 위원장은 “희생 없이는 변화가 (안 된다)”며 “와이프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하며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인 위원장은 그러면서 “제가 병원에서 (일하며) 휠체어를 밀고 이런 것을 잘한다”며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분들이 (낮은 곳으로) 내려와 자세를 많이 (바꿔) 들어야 한다. 듣고, 변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인 위원장의 또 다른 일성은 ‘통합’이었다. ‘왜 위원장직을 수락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단어로 정리하겠다. 통합을 추진하려 한다”며 “사람의 생각은 달라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는 이런 통합”이라고 답했다. 인 위원장은 최우선 원칙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단호하게 “통합, 통합”이라고 했다.
인 위원장 발탁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 비주류를 중심으로 “김한길 위원장이 인요한 위원장을 추천한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인 위원장은 여권 주요 인사 중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 위원장은 2019년 김 위원장과 그의 아내 배우 최명길씨가 진행했던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지난해엔 국민통합위 유튜브에서 김 위원장과 대담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한길 위원장이 인요한 위원장을 추천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인 위원장은 이날 위원장직에 발탁된 뒤 서울 시내 식당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가 끝난 뒤 인 위원장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묻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친분을 숨기지 않았다.
- 김한길 위원장이 추천한 건가.
- “여러 사람이 추천했다고 들었다.”
- 김 위원장이 따로 당부한 건 없나.
- “하나도 없다.”
- 김 위원장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 “김한길 위원장과는 몇년 전 (방송 프로그램) ‘길길이 산다’에 사모님(최명길)과 같이 출연해서 엄청 친한 사이다. 평소에도 전화를 매일 한다.”
인 위원장과 김 위원장의 친분이 알려지면서 당내에선 “혁신위의 운신의 폭이 얼마나 되겠냐”는 주장도 나왔다.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멘토라 여겨지는 김 위원장에 대해서도 필요한 쓴소리나 불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카드냐”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후엔 당사에서 김기현 대표를 만났다. 인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며칠 전 대표님과 식사를 했는데, 무서울 정도로 권한을 많이 부여해주셨다”며 “(당에) 들어와 우리 당의 편견에 따르지 말고, 우리 당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거침없이 도와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 대표도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해 국민에게 많은 희망을 주셨던 것처럼, 국민의힘에게도 창의력을 달라”고 요청했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과 혁신위 명칭 선정 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혁신위원 규모는 5~7명으로 전망된다. 인 위원장은 인선 기준에 대해 “능력 있는 분들을 보고 있다”며 “개인적 바람으론 여성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은 개항기 미국에서 건너온 유진 벨 선교사의 외증손자로,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자랐다.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엔 시민군의 외신 영어 통역을 맡았다.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 1호로 복수국적의 한국인이 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서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