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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서 조선의 실학과 살림·태교까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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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호 22면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1~3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1~3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1~3
박희병 지음
돌베개

‘한국고전문학’이라고 하면 고교 시절 외운 작가와 작품명만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대중에게는 서양이나 중국의 고전보다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40년 연구하고 가르친 한국고전문학사에 단군신화와 동명왕과 주몽의 건국신화부터 조선의 실학 글쓰기까지, 광범위하고 흥미진진한 콘텐트가 있다고 강조한다. 2021년 8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 전 마지막 학기 학부 강의를 녹음해 이 책으로 펴낸 이유다.

지은이는 ‘원전’과 함께 작가의 삶과 시대 상황을 가로세로로 파고들었다. 신선한 시각으로 한국문학사에 다가가는 즐거움도 준다.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 임윤지당·남의유당·이빙허각·이사주당을 보자. 임윤지당은 『중용』과 『대학』 해석에 자신의 견해를 밝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철학자로 평가된다. “내가 비록 여자이지만 하늘에서 받은 성(性)은 애초 남녀의 차이가 없다”며 자신의 학문 행위를 정당화했다. 남녀의 능력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통념에 맞선 사례다.

이달초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는 모습. 탈놀이는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제3권에 다뤄진다. [뉴스1]

이달초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는 모습. 탈놀이는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제3권에 다뤄진다. [뉴스1]

국문으로 『규합총서』를 저술한 이빙허각에 대해 지은이는 “요리와 살림을 처음으로 학문의 영역에 포섭했다”고 평가한다. 학문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당시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에 균열을 낸 사건이다. 이사주당은 태교를 다룬 『태교신기』를 저술해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임신·출산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했다. 남의유당은 함경도 명승지를 유람하고 국문 기행문 ‘동명일기’를 남겨 사대부 집안 여성의 문밖출입을 금기시하던 시대의 모순에 맞섰다.

고종 초기 한문소설 『포의교집』의 주인공 초옥과 한글가사 ‘덴동어미화전가’에 등장하는 덴동어미를 통해선 주체적 여성상을 살핀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배회하는 장사치 아내 초옥, 네 번 결혼한 덴동어미는 각각 고통을 이겨내고 자유로움을 얻는 하층여성의 주체성과 여성의 연대를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글쓰기를 분석하면서 알려진 인물을 다시 살펴볼 기회도 제공한다. 박지원의 문체와 삶, 그리고 사상을 상세히 분석한 뒤 그를 최치원·이규보·김시습과 더불어 “한국고전문학사의 최고 산문가”라고 평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지성·학식에선 김시습이, 내적 성찰력과 작가적 진정성에선 최치원이, 민족적 주체성의 자각과 애민의식과 글쓰기에 대한 열의는 이규보가 나을 수 있지만 기발하고 자유분방한 산문가라는 면에서 박지원을 능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주목되는 것은 박지원이 17세부터 몇 년간 유우지질(幽憂之疾), 즉 ‘깊은 근심의 병’을 앓았다는 사실. 오늘날 범불안장애로 부르는 증상이다. 친척이 영조에게 ‘임금은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갔다 온 뒤 병을 얻어 숨지는 것을 보고 현실에 대한 환멸과 번민이 더해져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마음의 병을 이겨낸 박지원은 그 뒤 백탑(원각사·지금의 종로2가) 주변에 살던 이덕무·유득공 등 실학자들과 교류하면서 고문 추숭에서 탈피해 자신의 고유한 문학관을 확립했다. 백탑시사(白塔詩社)라는 이름으로 모이던 이들은 시문과 편지를 모아 ‘백탑의 맑은 인연을 담은 책’이란 뜻의 책 『백탑청연집』도 냈다. 박지원은 노론의 대명의리론과 북벌론에 투철했지만 홍대용과 교류하면서 사상의 전환을 이뤘다.

44세 때는 삼종형의 자제군관으로 연경과 열하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자제군관은 사신이 자식이나 친척 한 사람을 데려갈 수 있는 제도다. 홍대용도 자제군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박지원을 담금질한 것은 이처럼 다른 사람, 새로운 세계와의 교류였다.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중화와 이적(夷狄·오랑캐)은 평등하며 중심과 주변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다. 중국은 물론 고려·조선에서 위력을 떨쳤던 중화주의와 화이론(세계를 중화와 오랑캐로 구분하는 것)을 전면적·근본적으로 재검토하자는 탈중화주의의 외침이다.

지은이는 ‘담연 그룹’의 중요성도 부각한다.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의 호에서 한 자씩 따서 이름을 붙인 이 지식인·문인 집단은 상호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예의 지평을 열고 배움과 지식,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했다. 여기에는 이덕무·유득공 외에 정철조·이서구·박제가 등이 포함된다.

담연 그룹은 수학·천문학·기하학 같은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많았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회통(會通·서로 다른 학문·사상·주장을 조화롭게 받아들임)이 이뤄졌다. 홍대용의 천문학 연구는 인간과 사물을 보는 눈, 세계를 보는 눈의 대전환을 불렀다. 박지원·박제가가 보여주는 합리주의적 태도는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지은이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문학, 천주교 순교자인 이승훈의 조카 이학규의 애민시와 민요에 대한 관심, 『청구야담』을 비롯한 조선 후기의 야담문학 등 인물과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한국고전문학의 넓이와 깊이를 보여준다. 탈놀이도 다루며 민중의식의 성장과 그 한계를 분석한다. 한국고전 콘텐트에 눈독 들일 문학·영화·연극·드라마·게임 제작자가 줄이어 나올 것 같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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