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0㎞ 속구 확신…칭찬 안한 아빠, 메이저 첫승 땐 꿈에 올거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1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명문 다저스 가는 19세 장현석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유일한 아마추어로 대표팀에 뽑힌 장현석이 10월 6일 중국과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유일한 아마추어로 대표팀에 뽑힌 장현석이 10월 6일 중국과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3 신분으로 병역 해결하고, 메이저리그 가는 행운아’.

장현석(19·마산용마고)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다. 팩트는 맞다. 올해 고교야구 랭킹 1위 투수인 장현석은 8월 9일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국제 유망주 계약(계약금 90만 달러)을 맺었다. 게다가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유일한 아마추어로 뽑혔다. 장현석은 홍콩전 1이닝 무실점, 중국전에선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10월 7일 대만과의 결승에서 2-0으로 이겨 금메달을 땄고, 선수 전원이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 장현석은 이달 하순 미국으로 출국한다.

장현석이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인 건 맞다. 그런데 그 운은 자신이 눈물로 반죽하고 정성으로 빚어낸 도자기와 같아서, 은은하게 빛난다. 지난 17일 마산용마고 교정에서 만난 장현석은 예의 바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의 팬이 되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아시안게임 출전 대표팀 막내, 2경기 1실점

대표팀에서 고우석 선수한테 슬라이드를 배웠다면서요.
“제가 던지는 슬라이드는 슬러브(슬라이더+커브)에 가까워요. 자이로스핀(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수직으로 떨어짐)을 더 먹여서 짧게 꺾이는 슬라이드를 던지고 싶었는데 그걸 고우석 선배님이 완벽하게 구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우석이 형, 슬라이더 좀 알려주세요’ 해서 배웠는데 스카우트 형이나 코치님들이 엄청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고우석 선수는 본인 필살기를 공개한 셈이네요.
“한참 어린 후배니까 좋은 마음으로 비법을 알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꼭 큰 무대에 가서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른 형들도 다 응원하지만 우석이 형이 있는 팀(LG 트윈스)이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경기 하도록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본인과 스타일이 비슷한 문동주(19·한화) 선수를 보면서 받은 느낌은?
“프로에서 선발투수 경험을 한 선수는 다르구나 싶었어요. 마운드에서 차분하고 위기를 맞아도 흥분하거나 흐트러지는 모습 없이 자신의 공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첫 국제대회 출전한 소감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받았을 때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2경기 2이닝 1실점이면 인생 첫 국제무대에서 성인 대표팀으로 출전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전에서 허용한 1타점 3루타는 조금 높은 슬라이더를 맞았는데 포수 (김)형준 형이 ‘잘 들어왔다. 타구 코스가 절묘했을 뿐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제겐 모든 순간이 큰 경험이고 자산이 됐습니다.”
고교생으로 병역을 해결했는데요.
“형들이 모두 금메달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23세 이하로 꾸린 팀이지만 멋지게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죠. 일본 사회인 팀 이기고 병역 면제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일본 사회인 야구는 실력만큼은 프로라고 알고 있어요. 게다가 야구는 워낙 변수가 많아서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8월 LA 다저스 입단 기자회견에서 등번호를 보여주는 장현석. [뉴시스]

지난 8월 LA 다저스 입단 기자회견에서 등번호를 보여주는 장현석. [뉴시스]

메이저리그로 방향을 튼 이유는?
“KBO리그로 가면 2~3년 안에 1군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야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젊은 시절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게 미련을 남기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더 컸죠. 다저스 스카우트 딘 킴 형이 메이저리그 시스템과 다저스 구단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셔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저는 마운드 위에서 누구한테도 안 진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위기에서 ‘어떡하지’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맞든 말든 자신 있게 던지려고 해요. 포수가 사인을 줘서 오케이 할 때도 있지만, 이 타이밍에 이걸 던지고 싶다고 했을 땐 사인 다 제치고 던지고 싶은 걸 던지는데 지금까지는 먹힌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점이 더 성장할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다져지지 않은 몸인데 대표팀의 (박)세웅 형이나 (고)우석, (정)우영 형 등은 완성 직전의 몸을 갖고 있었어요. 웨이트를 열심히 하고 미국 가서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받으면 더 성장할 것 같아요. 체중이 90㎏인데 97~98㎏까지는 가야 할 것 같고, 최고 구속이 158㎞까지 나왔는데 160㎞까지는 던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다저스에서 등번호 18번을 선물했는데.
“제가 생각한 번호 4개가 있어요. 지금 달고 있고 최동원 선배님 번호인 11번, 선동열 선배님 비롯한 최고 투수들이 단 18번, 오타니의 등번호 17번, 다르빗슈(일본)를 포함한 아시아계 선수들이 좋아하는 21번. 그 중에서 18번을 주셔서 좋았죠. 유니폼 받았을 때 디자인이 너무 예뻤어요. 저는 흰색이 잘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다저스 하면 떠오르는 흰색 바탕에 파랑색 로고가 박혀 있는 유니폼을 보고 ‘이걸 입고서 수만 관중 앞에서 던지면 어떨까’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오타니와 붙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오타니는 말 그대로 메이저리그를 씹어 먹고 있는 선수인데, 제가 빅리그에 올라가면 그런 선수와 같이 뛰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거고, 맞대결에서 승부를 해 본다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선발투수로 대결할 수도 있고, 타석의 오타니와 맞붙을 수도 있겠죠. 둘 다 멋진 경험이 될 거라고 봅니다. 요즘 여기저기 아프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오타니 선수! 제가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프지 말고 은퇴도 하지 마세요. 하하.”
메이저리그는 ‘도미니카에서 짱돌 던지다 온 애도 150㎞ 나온다’는 곳이죠. 본인의 공에 자신감이 있나요.
“짱돌 던지다 와서 150㎞를 던지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일본이나 한국 선수처럼 야구를 전문적이고 단계적으로 배우고 가는 거랑은 다를 겁니다. 저희는 초-중-고를 거치면서 기본기와 실전 경험을 쌓잖아요. 또 아시아 선수들의 장점은 제구력이죠. 강속구만 던지는 게 아닌, 원하는 코스에 원하는 구질의 공을 던지지 않습니까. 부상이 없다면 4~5년 안에는 빅리그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등생 때 교통사고 낸 이호준 “야구 해라”

장현석이 용마고 교정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보여주고 있다. 송봉근 기자

장현석이 용마고 교정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보여주고 있다. 송봉근 기자

장현석은 어릴 적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개인 레슨도 받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명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NC 다이노스 이호준 선수의 광팬이어서 사인을 받으러 뛰어가다가 후진하던 이 선수 차량의 뒷바퀴에 발이 깔렸다. 화들짝 놀란 이호준이 얼음찜질을 해준 뒤 병원으로 데려갔다. 큰 문제는 없었고 치료 과정에서 둘은 삼촌-조카 사이가 됐다. 이호준은 “너는 꼭 야구를 해라. 크게 될 거다”고 했고, 그 말을 믿고 따른 장현석은 고교 최고가 됐다.

장현석의 아버지는 태권도 선수 출신이고, 어머니는 학교 육상부를 했을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아버지는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아빠한테는 칭찬을 듣지 못했어요. ‘너 만한 애들 쌔고 쌨다. 안도하면 안 된다. 더 열심히 해라’ 하실 때마다 ‘또 잔소리 하네. 그만 좀 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혼잣말을 했어요.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두 달 동안 시체처럼 살았어요. 울고 밥 먹고, 울다가 잠들고. 학교도 안 가고 운동도 안 했죠. 진민수 감독님이 오셔서 ‘그만 힘들어 하고 당장 운동하러 나와’ 하셨어요. ‘네가 앞으로 집안의 가장이 돼야 하는데 성공해야 하지 않겠냐. 힘든 순간을 운동하면서 잠깐이라도 잊으면서 그렇게 버텨나가라’고 하신 감독님이 정말 고마웠어요.”
아버지가 “넌 역시 최고야”하면서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다면?
“딱 그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까요? 아빠한테 칭찬 한번 들어보겠다고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냥 ‘고생했다’ 한 마디 듣고 싶은데 안 해 주시니까 오기가 생겼죠. 매 순간 퍼펙트하게 던지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날 술을 잔뜩 드시고 들어오셔서 ‘네가 내 아들인 게 자랑스럽다. 근데 너무 칭찬하면 자만할 것 같아서 난 못 하겠다’고 하신 아빠, 메이저리그 가서 첫 승 하면 꿈에 한 번 나타나 주시겠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