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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전협정 70년과 이산가족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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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훈 이북5도위원장 겸 함경북도지사

이훈 이북5도위원장 겸 함경북도지사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70년이 흘렀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위협을 노골화하며 봉건적 세습 정권 유지를 위한 무력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7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북녘에 두고 온 고향에 가지 못하고 가족과 친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야 하는 실향민의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중 74%(9만3058명)가 고인이 됐다. 생존자의 85%(3만4341명)가 80대 이상일 정도로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실향민의 85%, 나이 여든 넘어
인권 빠진 북핵 협상 비현실적
북한 내부 변화 이끌 정책 필요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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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루속히 이산가족의 비극을 해결해야 함에도 김정은 정권의 잇단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이 문제를 논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진영·이념·정치 논리에 따라 다룰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기반해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절박한 현안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더 늦기 전에 다른 어떤 사안보다 우선해서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특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역대 정부는 북핵과 한반도 평화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와 압박 등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상황만 더 악화했다. 물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통한 핵 능력 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억제력은 비핵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북5도민들은 인권 이슈를 배제한 핵 협상 접근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정신과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고 대북 정책을 지혜롭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평화 통일을 향한 일관된 대북 정책이다. 그 키워드가 바로 ‘담대한 구상’과 ‘북한 인권’이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들과 달리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미 동맹을 대대적으로 강화해 북한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동에는 타협 없이 원칙적으로 대처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북핵에 대비한 확장억제 실행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통해 북한의 어떠한 위협에도 압도적 대응 역량을 확보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국제사회에 전했다. 이렇게 원칙과 상식에 기반해 일관되게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면 북한은 결국 대화와 협상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법은 북한 주민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자각하게 유도해 북한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 스스로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좋고 나쁜지 판단하고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힘을 모아 실질적 지원을 해가야 한다.

북한 주민의 눈과 귀가 열리고, 인권을 개선해 민주화로 나아갈 때 북한 주민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결정을 통한 합의 통일, 즉 평화 통일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오는 22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제41회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가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880만 이북5도민이 겪고 있는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고 화합과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다. 동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나온 1세대 어르신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 계승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북5도민 1세대 어르신들은 70여 년 전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굳센 의지와 성실함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역들이다. 1세대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원조를 주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도 880만 이북5도민은 자유민주주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철저한 안보 의식을 바탕으로 평화 통일의 대업을 향해 나아가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훈 이북5도위원장 겸 함경북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