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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병원 참사 "충격과 경악"…아랍국들 이스라엘 비난 결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 북부 한 병원에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이 서로 상대에서 책임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결집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직전 발생한 대참사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의 외교적 해법을 찾던 각국의 노력도 위기에 처했다.

가자시티 병원 폭발 500명 사망 

17일 밤 가자지구 북부 최대도시 가자시티의 알 아흘리 병원이 폭발한 후 부상자가 인근의 시파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7일 밤 가자지구 북부 최대도시 가자시티의 알 아흘리 병원이 폭발한 후 부상자가 인근의 시파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통신·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밤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최대 도시 가자시티의 알 아흘리 아랍병원에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다.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 따르면 갑자기 큰 폭발음이 들린 후 병원 일부가 불에 타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방에 유리 파편이 떨어졌다. 한 의사는 "수술 중이었는데, 강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수술실 천장이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폭발로 인해 여성과 어린이, 피란민을 포함한 최소 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백명이 건물 잔해 밑에 깔려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폭발 당시 알 아흘리 병원에는 수백명의 환자와 미처 가자지구 남쪽으로 대피하지 못한 피란민 6000여명이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가산 아부 시타 박사는 영국 스카이뉴스에 당시를 회상하며면서 "이건 학살"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 아부 셀미아 병원장은 "사상자 약 350명이 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고 말했다. 폭발 이후 이 병원의 의료 서비스 80%는 중단됐고, 병원 발전기 연료도 곧 떨어져 붕괴 직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이슬람권에선 '분노 시위'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외교적 노력을 찾고 있었지만, 병원 참사로 인해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참사를 계기로 이란을 포함한 중동·아랍권 전체가 결집하는 듯한 기류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강행할 경우 주변국 일대로 전쟁이 확대되면서 국제 질서와 유가를 포함한 국제 경제에도 파장이 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공식 애도의 날'을 선포하면서 "가자지구의 병원에서 팔레스타인 부상자들 위로 떨어진 미국·이스라엘 폭탄의 화염이 곧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들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말했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이스라엘을 규탄하면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아랍권에서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던 요르단·카타르 등도 일제히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사고 직후 요르단 외무부는 "이스라엘이 이 심각한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타르 외무부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병원·학교 등 인구밀집 지역으로 확대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사우디는 국제인도법을 포함한 국제법과 규범을 명백하게 위반한 잔혹한 공격을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러시아와 함께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레바논 접경에서 이스라엘군과 충돌 중인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무슬림과 아랍인들에게 "수요일인 내일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삼자"며 "거리와 광장으로 즉시 가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곳곳에서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 앞에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불을 지르는 등 격앙된 시위를 이어가 최루탄이 발사됐다. 베이루트 주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도 수백명이 건물에 돌을 던졌다.

유엔 등 국제사회 "충격과 경악"

알 아흘리 병원에 머물다가 폭발로 다친 팔레스타인들이 17일 가자시티의 시파 병원으로 대피해 의료진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알 아흘리 병원에 머물다가 폭발로 다친 팔레스타인들이 17일 가자시티의 시파 병원으로 대피해 의료진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명의 죽음이 경악스럽다"며 "병원과 의료진은 국제 인도주의 법에 따라 보호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병원에 대한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면서 "알아흘리 병원은 이스라엘군이 대피 명령을 내렸지만, 입원 환자들의 위중한 상태 등으로 대피가 불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알 아흘리 병원을 지원해왔던 성공회 측은 "병원 폭발은 '공포 쇼'"라면서 "누가 그랬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우발적이든 고의적이든 이 공격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며 "어떤 환자도 어떤 의사도 죽어선 안 된다. 병원은 국제법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스라엘 방문을 위해 미국에서 출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고 직후 성명을 통해 책임 주체를 언급하지 않은 채 "병원 폭발과 그것이 초래한 최악의 인명 피해에 분노하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때문"

병원 참사에 대해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상대방 탓이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하마스는 이번 병원 참사가 이스라엘군의 공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2008년 이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피해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도 "끔찍한 전쟁 학살"이라면서 "이스라엘은 모든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비판했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을 은폐하도록 했다"며 "미국이 병원 공격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번 참사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정파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발사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작전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가자지구의 테러리스트들이 로켓을 쐈고, 알아흘리 병원 근처를 지나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발사 실패로 병원에 참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한 측근은 "병원 참사 당시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 공습 대피령이 울렸는데, 실제론 어떤 로켓도 이스라엘 영토에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가자에서 이스라엘로 쏘는 로켓은 평균 33%가 목표물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떨어진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슬라믹 지하드 측은 "거짓말이자 날조이며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점령군(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학살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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