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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사는 MZ 암 발병률 사상 최고…충격의 건강검진 결과 [MZ 가속 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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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의 연구원인 강모(35)씨는 퇴근 후 자정까지 박사 논문을 쓴다. 라면이나 햄버거, 편의점 도시락 등으로 저녁을 겸한 야식을 먹는다. 주변에선 그에게 ‘갓생을 산다’고들 한다. ‘신(god)’과 ‘인생’을 조합한 MZ세대의 신조어는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그의 성실하면서도 고된 삶을 대변한다. 그래도 키 174cm에 몸무게 69.4kg을 유지해 건강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지난 6월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검진 결과는 충격이었다. 고지혈증, 지방간, 생활습관형 동맥경화 진단을 받았고 그에 따른 추가 검사를 권고하는 내용이 검진 결과지를 빽빽하게 채웠다. 체중은 정상 범위였지만, 지방이 많아 7㎏을 빼야 한다고 했다. 지방간은 경증에서 중증으로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강씨는 이후 병원 처방을 받고 고지혈증 약(스타딘계)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건강에 소홀했던 것 같다. 30대 중반에 내 몸이 이런 상태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빠른 노화에 놀라는 MZ…“숨은 환자도 많다”  

강씨처럼 빨라진 노화시계에 화들짝 놀라는 20~30대 MZ세대가 늘고 있다. 나이 들어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고혈압ㆍ당뇨ㆍ고지혈증ㆍ통풍 등 대사질환이 수십년 일찍 찾아오는 것이다.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병은 몸도 망가뜨리지만, ‘내 나이에 벌써?’ 하는 정신적 충격을 준다.

건강검진 문진표

건강검진 문진표

직장인 김모(35)씨는 자신이 통풍 환자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통풍은 혈액 내 요산이 쌓여 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으로 주로 40대 이상에서 잘 생긴다. 김씨는 30살에 진단받았다. 서울 한 자치구의 도시재생사업의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일주일에 서너번씩 술자리에 참석할 때였다. 김씨는 “회식 다음 날 다리가 삔 것처럼 붓고 아파서 ‘술 취해 다리를 삐었나’ 하고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가 통풍이라고 진단했다”며 “겨우 서른살에 통풍이라니 참 허망했다”고 말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MZ환자도 많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만성질환 환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아직은 젊다’면서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지 않는 경우다. 대한고혈압학회가 지난해에 발표한 ‘2022 고혈압 팩트시트(Fact Sheet)’에 따르면 20~30대 고혈압 환자의 질환 인지율은 19%였다. 전체의 인지율 69.5%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다.

삶은 달라졌고 노화는 빨라졌다 

의학계는 노년세대와 다른 MZ세대의 식습관과 생활패턴에 주목한다. 기름진 육류와 빵과 같은 정제 탄수화물 섭취가 증가했고, 최근 탕후루 열풍에서 보듯 당 섭취도 늘었다. 어디서든 손쉽게 스마트폰을 통해 그런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가공식품과 단순 당, 정제 곡물을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혈당이 굉장히 빠르게 오르고 인슐린이 분비돼서 혈당을 내려준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온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식탐으로 이어져서 (대사질환의 원인인) 영양 과잉 상태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한 탕후루 가게에 과일 꼬치가 진열돼 있다. 남수현 기자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한 탕후루 가게에 과일 꼬치가 진열돼 있다. 남수현 기자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중ㆍ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운동 부족이 쭉 이어진다. 대학 가서도 경쟁하고 취업 때문에 자격증 따고 알바를 한다. 끝없이 바쁜 생활 탓에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온다. 그런 생활 패턴이 되면 먹는 거로 보상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암ㆍ심혈관 질환도 안심할 수 없다

MZ세대의 대사질환 증가는 뇌혈관질환이나 암 같은 중증질환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지혈증ㆍ당뇨병ㆍ고혈압 같은 질환들은 지속될 경우 10~20년 동안 서서히 전신에 동맥경화를 유발한다”며 “처음에는 동맥경화가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가 많이 진행되면 혈관이 잘 막히거나 터진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학계는 20~30대 암 발생 증가도 주목하고 있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월 ‘설명할 수 없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암 증가(The unexplained rise of cancer among millennials)’라는 기사를 통해 “주요20개국(G20)의 20~34세 암 발병률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특히 25~29세의 암발병률은 1990~2019년까지 22%가 늘어, 다른 어떤 연령대보다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FT는 식습관의 변화와 이로 인한 소아비만의 등장이 암 증가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 의견을 소개했다.

나중은 없다…오늘부터 습관 바꿔야 

젊어서 망가진 몸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젊은 만큼 기회가 많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교수는 “중년은 살이 잘 안 빠지지만 젊은층은 군것질만 안 하고 술만 좀 줄여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과 돈을 들여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계단을 한 번 더 오르겠다는 생각으로 습관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조현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족 단위로 건강한 식단을 챙기고 운동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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