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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옥시아·WD 합병 초읽기…일본판 반도체 굴기, 삼성 따라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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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합병에 속도가 붙으면서 한국의 반도체 강국 입지에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도쿄의 키옥시아 본사 로고. 연합뉴스=로이터

일본 도쿄의 키옥시아 본사 로고. 연합뉴스=로이터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WD는 반도체 메모리 사업부를 분리해 키옥시아홀딩스(옛 도시바메모리)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최종 조율 중이다. 아사히는 “이달 내 (통합에) 합의를 목표로 한다”고 보도했다.

낸드 2·4위 업체간 결합, 점유율 합산은 1위

두 기업은 낸드플래시 시장의 강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1.1%), 키옥시아(19.6%), SK하이닉스(17.8%), WD(14.7%) 순이다. 키옥시아와 WD의 합산 점유율은 34.3%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서게 된다. 닛케이는 “두 회사가 합병하면 규모를 키워 투자 경쟁에 대비할 수 있고, 미국과 일본도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중국 정부 승인은 불투명

낸드는 PC와 스마트폰 등의 데이터를 기억하는 데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최근 세계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해 재고가 급증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반도체 부문에서 9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키옥시아와 WD의 합병이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미국과 일본이 승인한다고 해도 미국의 수출 규제를 받는 중국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닛케이는 “키옥시아에 간접 출자한 SK하이닉스도 반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매각 당시 컨소시엄을 통해 키옥시아 지분의 약 15%를 보유하고 있다.

 키옥시아 공장 전경. 연합뉴스

키옥시아 공장 전경. 연합뉴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이미 제휴를 통해 같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각각 다른 공장에서 생산하는 기업 간 합병에 비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병으로 낸드 생산 기업 수가 줄어들면 오히려 공급 측면에서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이 쉬워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국내 낸드 기업의 위기는 양적인 요소보다는, D램 분야의 고대역폭메모리(HBM)나 더블데이터레이트(DDR)5처럼 고부가가치 낸드 제품이 당장 보이지 않는 질적 요인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日, 국적 안 가리고 기업 유치 중   

다만 이번 합병 추진이 미국과 일본 반도체 산업간 긴밀한 협력을 상징하며, 일본의 공격적인 반도체 경쟁력 강화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바·NEC·히타치 등을 앞세워 세계 메모리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다 이를 견제한 미국이 일본 메모리 반도체 내수 시장의 20%를 외국 기업에 할당하도록 하는 미·일 반도체 협정(1986년)을 밀어붙이면서 쇠락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하지만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하자 일본은 이를 ‘반도체 부활’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년 이상 자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조건으로 국적 관계없이 기업 설비 투자의 최대 3분의 1을,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최대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마이크론과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대만 TSMC 등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에 공장을 짓거나 지을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첨단 반도체 연구시설을 짓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달 19일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공장을 짓고 있는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 인근 공업단지 지가가 31.1% 올랐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8월 28일 촬영한 TSMC 공장. 연합뉴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달 19일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공장을 짓고 있는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 인근 공업단지 지가가 31.1% 올랐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8월 28일 촬영한 TSMC 공장. 연합뉴스

소부장 경쟁력에 총력 지원 ‘경계론’ 부상 

김세환 KB증권 연구원은 “일본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 강점이 있다”며 “최근 매출이 증가하며 일본 반도체 기업의 평균 주가도 연초 대비 48% 상승해 닛케이255 상승률(19%)을 크게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도 “정부의 지원책만 놓고 보면 한국은 삼성전자가 그동안 메모리 1등을 하다 보니 경쟁국에 비해 간절함이 부족하다”며 “일본은 기본적으로 반도체 기술이 뛰어난 데다 이제 최우선으로 투자하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와 기업도 기술 경쟁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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