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은 커녕 합병증만…/엄청나게 풀린 돈 경제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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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12증시부양조치 1년/“무리한 부양책 역효과”교훈 남겨
한국 증권사에서 89년 12월12일은 「역사적인」날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이날 정부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라도 증시부양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그 12·12증시부양조치가 꼭 1년을 맞았다. 그러나 증시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리한 정책의 후유증은 국민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12·12조치 전날의 종합주가지수는 8백44였으나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보다 1백20포인트나 낮은 7백20선을 맴돌고 있다. 그것도 올들어 정부가 금융실명제 유보를 비롯해 증권주에 대한 신용융자 허용,증권거래세 인하,증시안정기금조성등의 후속조치를 쏟아낸 것을 감안할때 기대이하의 성적이다.
이같은 증시안정대책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현재의 주가가 어느 수준에 있을지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지만 당시의 정책판단이 증시침체의 근본원인을 간과했던 것은 분명하다.
증시전문가들은 86∼88년의 고도성장기에 편승해 너무 많이 올랐던 주가가 작년이후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면서 불가피하게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진단한다.
여기에 정국불안 및 투자자들의 성향,다시 말해 오를땐 모두들 「사자」세력에 가담하지만 떨어질땐 정반대로 「팔자」에 치우친 것이 장기침체를 심화시켰다.
주가하락이 이처럼 실물경제의 위축과 부동산투기의 극성,투자자들의 비합리적인 투자자세등에 기인하는데도 이를 몇가지 증권정책으로 대응했으니 결과는 뻔한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투자자들의 주장대로 「증시붕괴」라는 위기감에 쫓기면서 내놓은 무리수가 그렇잖아도 안좋은 경제전반에 주름살을 더해준다는 점이다.
우선 꼽히는 것이 통화문제다. 12·12조치로 은행들이 투신에 지원한 돈이 자그만치 2조7천억원에 이른다. 이같은 규모는 당시 총통화의 4.9%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으로 그때 높아진 시중 통화수위는 올 한햇동안 내내 통화정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투신이 사들인만큼 일반투자자들은 주식을 처분했을테고 이 돈중 일부는 부동산투기가 과소비로 이어져 결국 물가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다.
투신은 투신대로 그때 산 주식이 그동안의 주가하락으로 현재 평가손실이 5천억원을 넘고 있으며,자금난이 극도에 달해 연 2천억원에 달하는 주식매입자금에 대한 이자도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은행은 은행대로 막대한 대출금에 원금은 커녕 이자조차 못받는 통에 자금융통이나 수익성이 커다란 손실을 입고 있다.
증시 내부적으로는 정부의 부양의지를 믿고 적잖은 투자자들이 그때까지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외상으로 주식을 샀고 그후 주가가 더 큰폭으로 떨어짐으로써 최근 사회문제로 비화된 「깡통계좌」를 양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주식에 투자해서 손해를 봐도 정기예금금리는 보장해 주고 수익이 남으면 이를 나눠주는 보장형 수익증권이란 「비상식적」인 금융상품을 투신에 허용해준 것도 12·12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결국 12·12조치는 상처를 치유하기는 커녕 새로운 합병증만을 유발한 정책이었다는 얘기다.
12·12조치가 단 한가지 공헌한 바가 있다면 다시는 그같은 비상식적인 조치는 해서는 안된다는 컨센서스를 증권당국과 업계에 어느 정도 형성시켰다는 점이다.
지난 9월 주가가 6백대이하로 곤두박질치며 「증권공황」 얘기가 나오고 정치권과 증시주변에서 12·12조치에 맞먹는 황당한 요구가 쏟아져 나올때 그나마 「돈을 푸는 일」만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12·12조치의 폐해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가는 경제현상의 정직한 반영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더더욱 정권지수는 아니란 것,진정한 증시부양은 돈을 풀어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전반의 활력을 되찾는 것이란 인식등이 정책당국자·투자자·업계종사자들 사이에 확실히 심어져야 12·12조치가 그야말로 「역사적인」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박태욱·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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