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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과·응급실 기피, 필수의료 무너지고 지방은 궤멸 상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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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05면

의대 정원 확대 배경 

현재 소아암 치료 의사는 전국에 69명, 소아심장 수술 의사는 33명이다. 영·호남, 강원에서 치료가 안 돼 수도권으로 원정진료 다닌지 오래다. 이런데도 소아청소년과는 젊은 의사들의 기피 1호가 됐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이 2020년 71%에서 올해 25.5%로 떨어졌다. 응급실 의사 부족으로 ‘응급실 뺑뺑이’로 숨지는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 강원 영동지역은 심장내과 전문의(중재시술 의사)가 줄줄이 떠나면서 야간·공휴일에는 대관령을 넘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가 매년 1000명 이상, 앞으로 10년 간 1만 명 이상의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최고 속도의 저출산·고령화에다 고난도 수술·시술 분야 기피, 의료사고와 형사처벌 위기, 야간·휴일 당직 기피, 일·생활 균형 추구 등이 맞물려 소위 필수의료가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지만 제대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필수의료가 야금야금 허물어지는 데도 ‘보장성 강화’에 매몰돼 엉뚱한 데에 돈을 쏟았다. 지방 의료 체계는 이미 궤멸 상태에 빠져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증원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 여론도 의대 정원 확대에 우호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목포시)이 지난달 13~19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성인남녀 1003명에게 ‘의대 정원을 어느 정도 늘려야할까’ 물었더니 응답자의 24%가 1000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300~500명이라고 답한 사람이 16.9%, 500~1000명은 15.4%였다.

대한의사협회의 반대가 변수이다. 의협은 “정원을 늘려도 필수분야로 가지 않고 피부과·성형외과로 쏠릴 게 뻔하다”며 “필수의료 지원을 늘리는 게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현장의 상당수 의사들도 이런 입장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정원도 늘리고 필수의료 지원도 확대하는 정책을 병행하는 게 맞는다”며 “그렇게 하면 필수 분야를 지원하거나 지역에 남는 의사가 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원 확대와 관련, 이필수 의협 회장은 “복지부가 지난 8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첫 회의 때 의대 정원 문제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우리와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정부가 먼저 신뢰를 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필수의료 체계 개편 등의 정책 협의 테이블에 나가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최근 의협 집행부 중에서 가장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한다면 이 회장 집행부가 강성 모드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2020년 9월 정부가 의대 정원 400명 확대(10년 4000명), 공공의과대 설립 등을 추진하자 의협은 파업으로 맞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이번에도 의료계가 파업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는 의대 신설 여부를 포함하지 않는다. 목포·순천·창원·안동 등지에서 의대 신설을 강하게 요구한다. 내년 4월 총선과 맞물려 정치적 득실 계산도 분주하다. 또 정원 확대 규모가 정해지면 기존 40개 의대에 어떻게 배분할지도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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