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건실한 출발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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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의 지자제선거법 협상의 완결은 이 나라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한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구조화된 중앙집권의 권위주의 정치시대가 주민자치에 의한 분권화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마련됐다.
본격적인 지방화시대와 지방정치시대의 문이 활짝 열려 민주주의의 뿌리를 명실상부하게 키울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도록 국민 모두가 이를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민당이 의회기능을 잠시 마비시켰던 극한적 투쟁을 벌이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또 다소 미흡한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합의로 이 법을 마련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우리는 본다.
의회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불가결한 이 좋은 제도가 지금까지 우리가 수없이 겪어온 과열·타락선거의 확산으로 오손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감시하고 정치인들도 이를 의식해서 최대한 자제를 해야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여야가 지방자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대권고지의 전초전 및 중앙정치의 연장으로 지자제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행태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대비태세를 일찍부터 강화하는 것은 탓할 수 없지만 그 방향이 처음부터 선거과열현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그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사회혼란 및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권이 나라 안팎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실천의지를 보이는 것이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책임있는 공당의 태도라고 본다.
하물며 그런 선거태세 정비에 앞서 여야가 정부와 함께 해야 할 법적·행정적 제도의 보완이 시급한 현실임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50년대의 지자제 실시 때 드러났던 지역내의 반목과 불화요인의 제거방안,중앙과 지방간의 행정업무와 기능의 합리적 조정,지방재정의 확충방안,지방공무원제의 확립 등 선결현안이 산적해 있다.
여야가 선거법 협상에만 매달려 외면했던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보완방안을 지금부터라도 차분하게 모색해야만 할 필요가 절실하다.
다음으로 여야는 지자제 실시를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참된 초석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공명선거의 실시와 당내 민주화 확립 등에 실천적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방의회선거가 금권과 갖은 탈법부정행위로,대권을 겨냥한 중앙당의 지나친 관여로 인한 과열타락현상으로 얼룩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망국론이 고개를 쳐들고 정치불신은 한층 고조될 것임을 여야는 명심해야 한다.
또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앞으로 연이을 각종 선거에 막대한 정치자금이 풀려 물가교란과 사회적 낭비 등을 유발할 것임을 고려,지자제관련 선거만이라도 모두 한꺼번에 실시하는 방안도 여야는 진지하게 검토하도록 당부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자제의 의미가 주민자치에 있는만큼 광역의회 후보의 공천은 지역내 경선절차 등을 거쳐 중앙당이 확정하는 등의 철저한 민주방식이 도입돼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여야가 그런 태세와 의지를 보일 때라야만 지방주민의 복리증진,지역개발 촉진,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지자제 실시의 원목적에 올바로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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