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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마' 반 가르자 반전…말레이서 246만명분 필로폰 들어왔다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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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9월 8일 오후 7시, 경찰이 들이닥친 서울 양천구의 한 원룸에는 나무도마 수십 개가 쌓여있었다. 전기톱을 이용해 나무도마를 반으로 가르자, 안쪽 빈 공간에서 비닐로 포장한 흰 가루가 나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제조돼 국제화물로 위장, 국내로 밀반입한 필로폰이었다. 한국·중국·말레이시아 조직이 이런 방식 등으로 국내에 들여온 필로폰은 74㎏에 달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조직적으로 마약을 국내 유통한 혐의(범죄단체조직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로 이들 한국·말레이시아·중국 마약 유통 조직원 13명을 구속 송치하는 등 14명을 검거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외에 이들 마약 밀매에 단순 관여하거나 마약을 투약한 10명은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검거됐다.

이들 조직이 국내로 밀반입한 필로폰은 나무도마에 위장한 32㎏을 포함해 총 74㎏이다. 이는 시가 2220억 상당, 약 246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 중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10차례에 걸쳐 압수한 필로폰만 27.8㎏(92만6000명 투약량·시가 834억원 상당)이다.

이번에 경찰에서 적발한 밀반입 마약 규모는 2018년 10월 이후 최대치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당시 필로폰 112㎏을 밀반입한 일당 8명을 검거하고 필로폰 90㎏을 압수했다.

말레이·중국 총책 ‘마이클’ ‘루야’…韓조직과 역할 분담

경찰은 지난 7월 말 마약을 투약한 30대 여성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국제적인 마약밀매 조직의 실체를 감지했다. 이 여성에게 필로폰을 판 중국 유통책 2명을 검거하고, 이들의 행적을 역추적하면서다. 영등포경찰서는 8월 14일 경찰관 12명을 투입해 마약수사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벌였다.

수사결과, 마약 밀반입은 말레이시아에서 제조한 필로폰을 일본과 대만·홍콩 등에 반입해 유통하던 말레이시아 조직 총책 ‘마이클’이 한국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마이클은 중국 총책 ‘루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한국 총책(30대 중·후반 추정)과 국내 마약 유통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조직은 국내 밀반입 경로를 확보하고 필로폰 운반과 보관에 가담했고, 중국 조직은 밀반입된 필로폰을 주로 유통·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도마 속에 숨긴 필로폰…韓·말레이 총책 검거 등 남은 과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마약 74㎏을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 유통 일당 26명을 검거하고 이 중 14명을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필로폰과 나무도마 등 증거물. 사진 영등포경찰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마약 74㎏을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 유통 일당 26명을 검거하고 이 중 14명을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필로폰과 나무도마 등 증거물. 사진 영등포경찰서

대량의 마약을 들여 온 방식은 두 가지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등 두 차례 국제화물로 나무도마 300여개를 들여오는 것처럼 위장해 대량의 마약을 밀반입했다. 세관을 통과한 나무도마가 담긴 박스는 트럭 등을 이용해 국내 거점으로 옮겨졌다. 이런 방식으로 들여온 필로폰 32㎏은 말레이시아 조직이 직접 관리, 한국과 중국 조직에 분배해 유통했다. 지난 1월 27일 등 인편으로도 두 차례 밀반입이 이뤄졌다. 몸에 마약을 붙이고 두꺼운 옷으로 이를 숨기는 수법이다. 한국 유통책들은 이렇게 국내에 들여온 필로폰 42㎏을 건네받아 일부를 중국 조직에 전달했다.

100㎏에 달하는 필로폰을 추가 밀반입하려던 시도도 드러났다. 마이클은 필로폰이 은닉된 나무도마 화물이 통관 과정에서 적발되지 않고 말레이시아 조직원 거점에 이상 없이 배송되자, 필로폰 100㎏을 또다시 나무도마에 숨겨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선적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조직원 2명이 검거된 사실을 알게 되자 선적 대기 중인 화물을 즉시 회수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밀반입된 필로폰 중 남아있는 필로폰의 유통을 차단하고, 한국 및 말레이시아 조직 총책을 비롯해 미검거된 조직원 16명을 조속히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이라며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한 말레이시아 조직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경찰과 공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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