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이 특히 나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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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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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무서운 힘을 갖는다. 10은 10이다. 100이 될 수 없다. 평가와 판단의 객관적 근거가 된다.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도 매출·이익이 저조하면 버티기 힘들다. 성장률이 둔화되거나 실업자가 늘면 정부가 궁지에 몰린다. 그렇다고 숫자가 늘 명료한 건 아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낳는다.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하면 진실을 가릴 수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2016년부터 통계 사전 요구는 불법
실무자 일탈 아닌 조직적 개입 의혹
통계 중요성 잘 아는 경제학자 가담
조작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범죄

올해 30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중은 6.9%다. 5년 전엔 3.2%였다. 여성 임원 비중이 5년 새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여성 임원이 6.9%에 불과해 갈 길이 멀다. 삼성이 여성 임원 157명으로 가장 많지만, 비중은 7.5%로 30대 그룹 중간이다. 전체 임원이 많으니 여성 임원도 많았을 뿐이다. 보이는 숫자만 보거나 입맛대로 해석하면 오류에 빠진다.

명료한 듯 명료하지 않은 숫자의 맹점을 이용해 눈속임을 하는 ‘숫자놀음’이 여전하다. 실적을 내야 하는 정부와 민간 공히 유혹에 빠진다. 기업설명회(IR) 때 속지 않으려면 비교 시점을 잘 봐야 한다.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줄었는데, 전 분기보다는 늘었으면 기업은 전 분기 대비 증가율을 앞세운다. 지난해보다 이익이 감소한 건 덮어두고, 올해 목표치를 넘어선 점만 강조하기도 한다. ‘최대 50% 할인’. 수많은 품목 중 한두 개만 50% 할인해도 이렇게 선전한다.

정부는 불리한 숫자를 쏙 빼는 방식을 즐겨 쓴다. 1997년 11월 외환보유액이 100억 달러 남짓으로 바닥이었다. 정부는 이를 감추고 ‘펀더멘털에 문제 없다’는 말만 반복하다 외환위기를 맞았다. 2019년 초 기획재정부는 유리한 지표만 골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자료에 17년 만의 최고치인 실업률과 9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설비투자는 넣지 않았다. 나쁜 경제지표의 발표 시기를 선거 후로 늦추거나 불리한 숫자가 나온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는다.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조사 방식이나 산출 기준을 유리하게 바꾸기도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는 게 숫자에 손대는 통계 조작이다. 예전에도 있었다. 90년 일부 시·도가 예산을 더 타려고 인구를 허위로 늘렸다. 시·도가 신고한 인구를 모두 합치니 실제 인구보다 50만명이나 많았다. 2001년 노동부 산하 고용센터는 취업자 수를 부풀렸다. 취업한 근로자를 다시 실적에 포함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취업자로 변조하는 수법을 썼다. 2006년 정부는 서울 강남 3구 아파트 실거래가가 3~6월 14.4%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집값이 치솟던 시기여서 뜻밖의 결과였다. 알고 보니 3월에 A, B, C 아파트의 실거래가를 평균하고, 6월엔 C, D 아파트를 평균한 뒤 등락률을 구했다. 다른 아파트의 값을 비교해 마이너스 숫자를 끌어낸 황당한 조작이었다.

감사원이 최근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일각에서 “예전에도 있던 일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과거에 있었으니 지금 해도 된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그보다 더 나쁜 이유가 있다. 첫째, 2016년 이후 통계를 공표 전에 누설하거나 외압을 행사하면 법 위반이다. 당시 신설된 통계법 27조 2항은 누구든 공표 전 통계를 받아보는 것을 불법으로 못박고 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사람이 김현미 의원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바로 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부동산원에 ‘주중치’와 ‘속보치’를 사전에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둘째, 문재인 정부 수뇌부가 집권 내내 부동산·소득·고용 통계 조작에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예전처럼 한두 기관이나 일선 실무자의 일탈이 아니라고 한다.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다 날린다.” “서울 상승률 0.05%, 안 되면 전주(0.06%)에 맞춰라.” 협박에 가까운 노골적 지시는 군사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화에 헌신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거꾸로 돌린 것이다.

셋째, 감사원이 통계 조작 혐의로 수사 의뢰한 22명 가운데 장하성·김상조·홍장표·황덕순·강신욱 등 경제학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경제학은 통계적 방법으로 이론을 검증하는 학문이다. 숫자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경제학자는 통계의 정확성·중립성·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들이 조작을 주도했다면 경제학의 신뢰를 허무는 심각한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 발표 다음 날 “문재인 정부 고용률이 사상 최고였다”고 주장했다. 통계 조작이 문제가 됐는데, 동문서답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2018~2021년 고용률은 60% 선에 그쳤다. 사상 최고라고 자랑한 2022년(62.1%)은 5월에 정권이 바뀌었으니 오롯이 문재인 정부 성과로 볼 수 없다. 그리스는 재정 통계를 속였다가 부도 위기에 몰려 9년간 구제금융을 받았다. 중국 통계는 지금도 믿을 수 없다. 경제가 나빠져도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니 처방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 통계는 정책 결정의 근간이 된다. 유리한 통계만 골라 써도 오판을 부르는데, 통계 자체를 조작했을 때의 부작용은 말해 무엇하랴. 국민을 속이고, 수렁에 빠뜨리는 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