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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청소년이 성인돼도 못 사게…英 "나이제한 1년씩 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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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열린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에 취임 후 처음 참석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장기 계획(결심)'이라 쓰여진 단상 앞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열린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에 취임 후 처음 참석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장기 계획(결심)'이라 쓰여진 단상 앞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담배를 살 수 있는 법적 나이를 매해 1년씩 높여, 현재 청소년층이 성인이 돼도 평생 담배를 살 수 없게 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국민 건강을 고려한 획기적인 대안이라는 의견과 부작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열린 집권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 수낵 총리는 "2009년 이후 출생한 현재 14세 이하는 성인이 돼도 합법적으로 담배를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담배 구매 가능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매년 1년씩 올리면서 이르면 2040년부터는 젊은 사람들의 흡연을 거의 완전히 중단시켜 '흡연 없는 세대'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2009년생이 18세가 되는 2027년에는 흡연 가능 연령이 19세가 되고, 이듬해엔 20세로 올린다. 이렇게 1년씩 상향해 평생 합법적으로 담배를 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정책은 이미 지난해 12월 발표,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흡연 정책과 유사하다.

수낵 총리는 이와 함께 풍선껌 향 등 청소년 이용자의 구미를 당기는 담배 향 등에 대한 단속을 포함해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 제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흡연으로 매해 4명 중 1명꼴로 암 사망자가 발생하고, 연간 6만4000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대부분이 20세가 되기 전에 흡연을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가 의뢰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흡연을 하는 18~24세 청소년의 비율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25%에서 35%로 증가했다. 영국 내 흡연자는 지난해 기준 약 600만명으로, 전체 성인 인구의 12.4%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 보건 당국은 지난 2019년 '스모크 프리(Smoke-Free·담배 없는 사회) 2030'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국 내 실내 흡연 금지령(2007년), 담배 매대 진열 금지(2010년) 등 흡연 관련 정책에 뒤이어 현재 흡연율 5% 미만으로 대폭 줄여 2030년까지 영국을 '흡연 없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보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수낵 총리가 강화된 금연 정책을 내놓은 데엔 흡연이 암 등을 유발해 영국의 공공의료제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재정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수낵 총리는 "흡연으로 NHS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연간 170억 파운드(27조 9000억원), NHS엔 24억 파운드(3조 9400억원)의 비용 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4일(현지시간) 담배 구입이 가능한 법적 나이를 단계적으로 높여, 현재 청소년층은 성인이 돼도 평생 담배를 살 수 없게 하는 고강도 흡연 제한 대책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4일(현지시간) 담배 구입이 가능한 법적 나이를 단계적으로 높여, 현재 청소년층은 성인이 돼도 평생 담배를 살 수 없게 하는 고강도 흡연 제한 대책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국민건강 증진 VS 급진주의 정책" 

담배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영국 최대 담배 판매 업체인 임페리얼 브랜즈는 블롬버그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범죄 조직이 불법적으로 제품 유통하는 길을 열어주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수낵 총리의 전당대회 발언 이후 이 회사의 주가도 영국 증시에서 전일 대비 4.3% 급락했다.

NHS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라면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영국 의료 보건의 근간인 NHS엔 잇따라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영국 전역 의료 기관의 잉여 병상률은 2%에 불과하다. 병상이 없어 진료 대기 중 사망하는 사람도 12만명에 이르러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설비 투자가 미비해 의료 시설이 노후화 되고, 정부의 의료 지원 삭감에 인건비 등에 불만을 토로하는 의료진들의 대규모 파업이 겹치면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을 통해 "(흡연 제한 정책은) 총선을 앞둔 수낵의 '이상한' 급진주의"라 꼬집으며 "당장 NHS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은 있지만, 만성 적자를 비롯해 현재 영국 보건 당국이 당면한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흡연 세대'를 만들겠다는 수낵 총리의 정책은 의회 승인을 거쳐야 시행될 수 있다. 노동당 등 야당은 찬성 입장인데 비해 되레 집권 보수당 내에서 개인 선택권을 짓밟는 대책이라며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금지 조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면서 "이 제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비롯해 보수당원 일부는 '양심 투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데일리메일 등 영국 주요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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