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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쇼크에 ‘검은 수요일’…주식·원화·채권 트리플 급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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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4일 금융시장은 ‘검은 수요일’을 맞았다. 이날 코스피는 2% 넘게 급락하며 2400선에 턱걸이했다. 원화와 채권값 역시 연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트리플 약세’다. 미국발 긴축 장기화 우려에 미국 국채 금리가 4.8%를 뚫고 수퍼달러(달러 강세)가 되살아나면서다. 긴 연휴 기간 쌓인 대외 악재가 한번에 반영된 영향도 크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추석 연휴로 일주일 만에 문을 연 코스피는 파랗게 질렸다. 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41%(59.38) 하락한 2405.69로 장을 마쳤다. 3월 21일(2388.35) 이후 가장 낮다. 코스닥은 4%(33.62) 폭락하며 807.4로 마감했다. 두 시장의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62조7923억원 증발했다. 기관과 외국인투자자의 ‘쌍끌이 팔자’ 영향이 컸다. 개인이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코스닥에서 2차전지 열풍을 이끈 기업들의 주가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에코프로(-8.55%)와 에코프로비엠(-7.11%) 등 에코프로 형제주가 7% 이상 급락했다. 코스피 시장에서도 포스코퓨처엠(-6.54%), LG에너지솔루션(-4.3%)의 하락 폭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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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달러당 14.2원 급락한(환율 상승) 1363.5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지난해 11월 10일(1377.5) 이후 가장 낮다. 국고채 금리는 크게 들썩였다. 국채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가 발행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321%포인트 치솟은 연 4.351%로 장을 마쳤다.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경색 우려가 커졌던 지난해 10월 수준으로 올랐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도 0.224%포인트 상승한 4.108%로 뛰었다.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친 데는 치솟는 미국 국채 금리 영향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연 4.823%까지 오른 뒤 연 4.803%에 마감했다. 특히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5% 선에 다다른 연 4.927%로 마감했다. 2007년 10월 이후 가장 높다. 고용시장을 비롯해 여전히 탄탄한 경제지표가 금리 상승의 불쏘시개가 됐다.

한국경제 덮쳐오는 3고 쓰나미…살아난 수출불씨에 또 찬물

4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465.07)보다 59.38포인트(2.41%) 하락한 2405.69에 마감됐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4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465.07)보다 59.38포인트(2.41%) 하락한 2405.69에 마감됐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미국의 ‘정치적 리스크’도 국채 금리 상승을 부채질했다. 미국 국회에선 한 달짜리 임시 예산안이 통과했지만, 이를 주도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표결 끝에 해임되자 ‘미국 정부의 셧다운’ 공포감이 더욱 커지면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Fed의 고강도 긴축 장기화 우려에 정치적 리스크가 더해져 미국 국채 금리가 뛰고 있다”고 말했다.

되살아난 수퍼달러도 국내 금융시장을 흔드는 요인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4일 오후 4시 기준 107선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 가장 높다.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는 데다 강달러가 지속하면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시 이탈이 본격화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들은 9월 한 달 동안 거래소에서 1조원, 코스닥에서 1조2000억원 등 총 2조2000억원을 순매도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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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상당수 증시 전문가는 ‘고금리 장기화’와 수퍼달러 등 미국발 긴축 여진이 한동안 국내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3분기 한국 기업 성적표(실적)에 기대감이 한풀 꺾인 점도 변수로 작용한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을 전망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50곳의 3분기 평균 예상 영업이익은 총 45조4944억원으로 한 달 전(46조312억원)보다 5368억원(1.16%) 감소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2013년 수준의 ‘긴축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벤 버냉키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카드를 꺼냈을 때 신흥국의 통화는 물론 채권, 주식 가격이 급락하는 긴축 발작이 나타났다.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실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한국 경제를 뿌리째 뒤흔드는 고금리·고환율·고유가, 이른바 ‘3고(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어서다. 이 여파로 수출 회복세가 꺼지고 내수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향후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上底下高)’는 고사하고 ‘L자’형 경기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3고 현상은 소비 등 내수 부진을 부추길 수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가계와 기업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 기업과 가계의 조달 및 이자 비용이 늘어나고, 그만큼 소비와 투자는 위축된다”면서 “여기에 국제 유가 상승과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재차 자극하면 실제 구매력을 떨어뜨려 소비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수출 부진 속에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소비는 최근 들어 꺾이는 모양새다. 지난 8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달보다 0.3% 줄며 두 달 연속 감소했다. 지난달 전년 대비 감소 폭을 4.4%로 줄이며 회복세를 보인 수출에도 3고 현상은 악재다. 특히 ‘원화 가치가 낮아지면 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 수출이 늘어나고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경제학 교과서가 통하지 않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중간재 수입 가격 상승이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국내 수출제품 가격 하락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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