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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중 쫓겨난 집 들어간 남편…헌재 "주거침입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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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미지. 중앙포토

이혼 이미지. 중앙포토

A씨는 아내 B씨와 2010년 혼인신고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B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자, A씨가 타지에서 외벌이로 생활비를 조달하게 되면서다. 두 사람은 2019년 경기 안산시에 집을 마련하면서 B씨 명의로 했고 A씨는 충남 천안에서 주로 생활했지만 주소지는 주말이면 찾는 이 집에 뒀다.

그런데 2021년 6월 B씨는 돌연 A씨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 이혼 의사가 없던 A씨는 여름 휴가 일부를 이 집에서 보냈다. 같은 해 8월 18일 A씨는 자신의 짐을 찾으러 집을 방문했지만 B씨가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내쫓자 B씨의 격리기간 2주가 지난 뒤 B씨가 외출한 사이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갔다. 그러자 B씨는 경찰을 대동해 집에 돌아왔고 경찰은 문을 열어 준 A씨를 주거침입 현행범으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A씨의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기소는 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행정처분이다. 그러자 A씨는 검찰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외부 전경.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외부 전경.

이례적 결정…쟁점은 ‘공동거주자’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6일 A씨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A씨가 이 사건 주택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행위가 주거침입죄를 구성한다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중대한 수사미진이나 사실오인,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헌재 결정은 별거 중 상대방이 사는 집에 동의 없이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쉽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해 온 법원의 주류적 판결과는 방향이 다른 결정이다. 이현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올)는 “이번 헌재 판결은 다소 이례적”이라며 “이혼 소송 도중 주거침입 혐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선레가 적잖다 보니, 의뢰인들을 상대로 ‘별거에 들어간 이상 기존 자택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코치를 하는 게 통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쟁점은 A씨가 문제 된 주택의 ‘공동거주자’에 해당하는지였다. 주거침입은 ‘타인’이 거주하는 집에 거주자의 허락 없이 들어가는 행위로 해석돼 공동거주자에게는 주거침입죄를 적용할 수 없다. 헌재는 ▶A씨가 10년 넘게 혼인생활을 유지해왔고 ▶주택 매매대금 상당 부분을 마련했고 ▶A씨 소유의 물건들이 여전히 해당 주택에 보관 중인 사실 등을 고려해 공동거주자 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B씨가 A씨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거나 A씨를 이 사건 주택에 일방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A씨와 B씨 사이에 부부관계를 청산하고 A씨가 이 사건 주택에 더 이상 살지 않기로 하는 명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 밖에 A씨가 공동거주자 지위에서 이탈하였다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A씨의 행위에 대해 “주거 평온 상태를 해치는 침입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밀번호는 공동거주자로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던 것이지 불법적이거나 은밀한 방법으로 취득한 게 아니라는 점▶시기도 B씨의 코로나19 자가격리 기간이 종료될 무렵을 택한 것일 뿐이라는 점▶B씨가 경찰을 대동하고 오자 문을 열어줬다는 점 등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전경.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전경. 연합뉴스

이현곤 변호사는 “사람이 없을 때 짐을 찾으러 들어간 행위 정도로는 주거 평온을 깨는 정도라고 볼 수 없다는 예외를 인정한 결정으로 보인다”며 “이혼 소송 중이라면 이미 부부관계는 파탄이 난 상태라고 보기에, 배우자가 함부로 들어오면 주거침입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주류적 판단에 바로 영향을 주긴 어려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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