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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선 '셧다운' 폴란드선 100만명 시위…우크라 지원 흔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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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강력한 지원 기류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강력한 우방국을 자처해왔던 폴란드와 미국 등에서 지원이 축소될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폴란드에선 우크라이나에 무조건적 지원을 제공해왔던 집권여당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미국에선 ‘셧다운’(정부 업무 중단) 사태를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을 뺀 임시예산안이 처리됐다.

폴란드인들이 지난 1일 수도 바르샤바 중심부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오는 15일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 시민강령당(PO)이 100만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추진했다. AFP=연합뉴스

폴란드인들이 지난 1일 수도 바르샤바 중심부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오는 15일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 시민강령당(PO)이 100만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추진했다.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는 15일 총선을 앞둔 폴란드 제1야당 시민강령당(PO)이 수도 바르샤바에서 반정부 집회를 개최했다. 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바르샤바시 당국은 이번 집회에 역대 최대 규모인 100만명이 집결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온라인 뉴스채널 onet.pl 역시 집회 참석 규모를 60만∼80만명으로 추산했다. 우치·바우브지흐·크라쿠프 등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1980년대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했던 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PO는 중도우파 성향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 물자 지원에 찬성해왔다. 다만 현 집권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이 우크라이나에 과도한 지원을 했다며 지원 규모에 있어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실제 PO를 이끄는 도날트 투스크 전 총리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확산되는 기류와 관련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집회는 폴란드가 다시 태어나는 신호"라며 폴란드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논쟁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으로 우리 농부들이 보호받지 못했다"며 "폴란드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집권당인 PiS는 38% 지지율로 31%의 PO를 다소 앞서고 있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PO와의 지지율 격차는 지난 여름 이후 급격히 좁혀지는 추세다. 그러자 PiS 소속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최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을 막고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농민들의 표심을 단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나서 하루 만에 총리의 발표 내용을 번복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원국을 자처해왔던 폴란드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 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슬로바키아에서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친러시아 ·반미국 성향의 야당 사회민주당(SD·스메르)이 약 23% 득표율로 17%를 득표한 친서방·자유주의 정당인 진보적 슬로바키아(PS)를 이겼다. SD의 승리를 이끈 로베르트 피초 전 총리는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며 "더는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 워싱턴 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임시예산안에 대해 연설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 워싱턴 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임시예산안에 대해 연설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對)러시아 단일대오에 앞장섰던 미국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미 연방의회는 지난달 30일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을 우선 처리해 정부의 일시 업무 중단을 의미하는 셧다운 사태를 피했다. 그런데 해당 임시예산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항목이 반영되지 않았다. 셧다운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 하원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공화당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에선 미국의 추가 지원이 축소되거나 아예 끊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올렉시 곤차렌코 우크라이나 의원은 "이번 일은 충격적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제외된 것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라며 "미국의 지원 없이는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기회는 사실상 없다"고 우려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은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빠진 임시예산안에 서명하면서도 공화당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되살릴 것을 촉구했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누락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또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EU의 외무장관 회의가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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