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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독한 입, 바이든도 혀찼다…영부인 "대선 안 나갈 수도"

중앙일보

입력

서방이 전쟁으로 계엄 상태인 우크라이나에 내년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출마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조건부 불출마를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이후 보인 지도력으로 서방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최근 우방국들에 대한 지나친 비판으로 호감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말 개전 이후 계속 연장된 계엄령에 따라 선거가 금지된 상황이지만, 서방에선 대선과 총선을 실시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당초 우크라이나는 올 10월 총선에 이어 내년 3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앞서 지난 5월 티니 콕스 유럽평의회 의회(PACE) 대표는 올초 대지진을 겪은 뒤에도 대선을 치른 튀르키예 사례를 들며 "우크라이나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미 공화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다음 단계를 보여주기 위해 내년 대선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WP는 서방이 이렇게 압력을 가하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엔 전시에 선거를 치르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 관계자는 러시아가 선거 과정에서 침투해 사회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전쟁 중에 민주적인 선거가 가능한 상황은 없다"고 말했다. 율리아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도 선거 중에 발생하는 정치적 이견은 국가 단결을 무너뜨린다면서 "전시 선거의 대가는 전쟁 패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방으로부터 무기와 재정 지원을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서방의 압박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WP는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난달 서방의 재정 지원이 있으면 전시 선거가 가능하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1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1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출마는 유력해 보인다. 개전 이후 그의 우크라이나 내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 2월엔 지지율이 90%를 넘었다. 다만 서방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지난해처럼 견고하진 않은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나친 우방 비판이 화근이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국산 곡물 수출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일부 유럽국가(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 등)를 향해 "정치적으로 우리를 지지한다면서 실제로는 러시아 편을 든다"고 비난했다. 이에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우방국임을 자처했던 폴란드가 발끈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폴란드인을 모독하지 말라"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월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서방에서 나토 가입 일정을 명시하지 않자, 소셜미디어(SNS)에 "전례 없고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 당국자들이 그의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나토 정상회의 공동 성명에 우크라이나 가입 문제에 대한 언급을 빼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우방인 영국의 벤 월리스 전 국방부 장관도 지난 7월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쇼핑하듯이 서방 국가에 무기 지원을 닦달한다면서 다소 무례하다고 지적했다. WSJ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서방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자국에서 놀라운 지지를 얻었지만, 다른 세계 지도자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우방국의 불만을 사고 있다"면서 "그는 외교적 수완이 있지만 반복적으로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DC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와 함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준 미국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DC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와 함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준 미국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서방의 확고한 지지가 없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출마는 순조롭지 못할 수 있다. 젤렌스카 여사는 이날 보도된 미국 CBS방송 시사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과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도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 "우리 사회가 더는 그가 대통령이 되길 원하지 않으면, 그는 아마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재출마를 결심한다면 "이미 대선을 경험해본 적이 있어서 처음처럼 무섭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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