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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점심으로 0.4 화시폐 썼어” 中 립스틱 오빠 막말에 등장한 신종 화폐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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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새로운 화폐가 등장했다.  

중국 라이브커머스 전문 쇼호스트 리자치. 사진 비주얼차이나

중국 라이브커머스 전문 쇼호스트 리자치. 사진 비주얼차이나

모든 것은 중국 라이브커머스 황제 ‘리자치(李佳琦·Austin Li)’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리자치는 ‘30초 동안 립스틱 많이 바르기’ 기네스북 도전에 성공해 ‘립스틱 오빠’라는 애칭을 얻은 인물. 중국 화장품 판매 라이브커머스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지난 9일 리자치는 중국 로컬 화장품 브랜드 ‘화시즈(花西子·Florasis)’의 아이브로 펜슬을 판매하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79위안(약 1만 4500원)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시청자의 댓글에 그는 “계속 이 가격에 판매했는데 뭐가 비싸냐”며 “함부로 말하지 마라, 국산 브랜드도 힘들다”고 응수했다. 이어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라며 “수년 동안 월급이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 열심히 일했는지 되돌아보라”고 일침을 날렸다.

(왼)리자치의 발언으로 '리자치'와 '화시즈' 관련 키워드가 중국 인터넷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사진 펑파이신문/(오)공개 사과하는 리자치. 사진 바이두

(왼)리자치의 발언으로 '리자치'와 '화시즈' 관련 키워드가 중국 인터넷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사진 펑파이신문/(오)공개 사과하는 리자치. 사진 바이두

이 발언으로 리자치와 화시즈는 나란히 중국 내 각종 SNS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겪고 있는 중국의 젊은 세대는 그의 발언에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리자치는 11일 생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화시즈가 정말 비싼지 안 비싼지’는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다. 급기야 노동자를 울리는 차세대 화폐단위인 ‘화시폐(1화시폐=79위안)’가 등장했고, 중국 인터넷에는 ‘나 오늘 점심으로 0.4화시폐 썼어’ 등 각종 풍자가 쏟아지고 있다.

논란의 화시즈, 정말 비싼가?

화시즈 브로우 펜슬을 판매하는 리자치. 사진 바이두

화시즈 브로우 펜슬을 판매하는 리자치. 사진 바이두

화시즈는 중국의 신흥 로컬 뷰티 브랜드다. 올해 618 쇼핑축제(618大促, 중국 상반기 최대 온라인 쇼핑 행사)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틱톡 618 쇼핑축제 메이크업/향수 부문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화시즈의 파우더, 브로우 펜슬, 립스틱 등 대표 상품의 가격은 100위안(약 1만 8354원) 내외다. 그런데 왜 유독 화시즈의 제품은 비싸다는 말을 들을까?

리자치의 라이브 방송에서 판매한 브로우 펜슬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79위안의 판매 구성에는 본품 1개와 리필 2개가 포함되어 있다. 브로우 펜슬 하나당 0.08g의 용량으로, 그램 당 가격은 329.2위안(약 6만 원)이 된다. 알리바바 산하 온라인 쇼핑 플랫폼 티몰(天貓· Tmall)에서 판매 중인 디올 브로우 펜슬은 290위안(약 5만 3198원)으로 그램당 가격을 계산했을 때 243.7위안(약 4만 4717원)이다. 즉, 그램 당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화시즈가 디올보다 비싼 것이다.

중국 SNS 플랫폼 웨이보(微博)에서 진행한 ‘화시즈가 비싸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조사에서 ‘그렇다’고 대답한 이는 4만 2000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95%에 달했다. 화시즈 역시 얼마든지 고급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브랜드 포지셔닝과 제품 가격은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중국 소비자가 화시즈에 비싼 값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시즈, 다른 의미로 ‘미친 가성비’?

화시즈 메이크업 제품. 사진 소후

화시즈 메이크업 제품. 사진 소후

반면, 티몰 화시즈 공식 스토어 리뷰에는 제품 품질에 대한 혹평이 적지 않다. 많은 사용자가 파우더 제품의 가루 날림이 심한 것과 립스틱 실제 발색이 사진과 다른 점을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 듯 화시즈는 지난해 메이크업 제품 개발에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지난해 초 ‘중국 화장품 연구개발의 일인자’로 불리는 리후이량(李惠良)이 연구개발팀에 합류했다. 그뿐만 아니다. 앞으로 5년간 10억 위안(약 1832억 2000만 원) 이상을 투자해 ‘아시아 메이크업 연구개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기업 정보 플랫폼 톈옌차(天眼查)에 따르면 화시즈의 모회사인 이거그룹(宜格集團)은 2022년과 2023년 총 26건의 특허를 출원했는데, 이 중 미용 기기, 클렌징, 자외선 차단 관련 특허가 21건이었고, 메이크업 제품 관련 특허는 2건뿐이었다.

립스틱 오빠로 흥하고, 립스틱 오빠로…

리자치와의 깊은 협력관계 역시 화시즈의 문제점이다. 리자치와 화시즈의 인연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리자치는 화시즈의 제품 연구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화시즈는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리자치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19년만 해도 티몰 판매량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다음 해 618 쇼핑축제 판매량 1위에 등극했다. 또한, 2020년 한 해에만 30억 위안(약 5492억 7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중국 로컬 메이크업 브랜드 최강자로 우뚝 섰다.

문제는 화시즈가 리자치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됐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은 화시즈가 사업 초기 생방송 플랫폼에만 매달 2000만 위안(약 36억 6180만 원)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투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화시즈는 비용 절감을 위해 라이브커머스 진행자 교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일반 진행자의 영업수익은 10%를 밑도는데 리자치 한 명이 20%가 넘는 영업수익을 가져다주니 쉽게 변화를 주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그러나 ‘리자치 효과’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2019년 상반기 전체 매출 중 라이브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8.48%였는데, 2021년 상반기는 5.25%에 그치고 말았다. 최근 논란과는 별개로 화시즈가 창업 이래 펼쳐온 라이브커머스 마케팅의 약발이 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로컬 색조 화장품의 부진, 답은 ‘통 안’에?

라이브커머스가 등장하면서 시각적 효과가 확실한 메이크업 산업이 큰 수혜를 입었다. 화시즈의 창업자 우청룽(吳成龍)은 스킨케어 브랜드 바이췌링(百雀羚·Pechoin) 온라인몰 운영 총감독 출신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에 이해가 깊은 인물이다. 화시즈는 중국에서 라이브커머스 열풍이 시작되는 무렵 적극적인 콘텐츠 마케팅을 펼쳐 가장 먼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퍼펙트 다이어리의 광고 화보. 사진 퍼펙트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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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페이잉(張培英) 패션 뷰티 산업 전문가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보통 3% 이상인 반면, 중국 로컬 브랜드의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일반적으로 1% 미만”이라며 중국 로컬 브랜드가 제품개발보다 마케팅에 힘쓰는 현상을 지적했다. 메이크업 제품은 사용 효과가 어떤 제품보다도 직관적으로 보여서 지속적인 연구와 축적이 필요한 분야다.

장이(張毅) 아이미디어 컨설팅 CEO는 화웨이 신제품 휴대폰으로 예로 들어 화시즈의 부진을 설명했다. 그는 “화웨이 자체 연구 칩의 유창함과 안정성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증명하기에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한다”라며 “반면 화시즈 같은 브랜드가 비싸다고 토로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제품에서 가격에 상응하는 개발과 혁신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의 '비싸다'는 말은 곧 가격에 상응하는 품질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로컬 스킨케어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연구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광다증권(光大証券) 이 화장품 상장사 상반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 화에 바이오(華熙生物· Bloomage Biotech), 베이타이니(貝泰妮·Botanee Group), 프로야(珀萊雅·Proya), 자이언트 바이오(巨子生物· Giant Biogene)를 포함한 스킨케어 브랜드의 2023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57%, 순이익은 27.0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중국 뷰티 시장에서도 제품력이 가장 중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고운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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