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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전략목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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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국가지도자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왼쪽부터) [중앙포토]

중국 역대 국가지도자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왼쪽부터) [중앙포토]

일전에 시진핑 시대 중국의 세 방향 전략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엔 1949년 공산당 정권이 대륙을 통일한 후 일관되게 견지해 온 신중국의 전략 목표에 관해 얘기해 본다. 중국 지도부는 통상 자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을 명시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왔다. 전략목표에 대해 지도부가 말을 아끼는 것은 무언가를 은폐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전략적 사고나 계획과 관련해 유연하면서도 최종적인 목표를 열어두려는 중국 특유의 접근방식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의 발언이나 관영 언론, 출판물을 통해 공공연히 회자되어 온 핵심적 표현들이 존재했다. 마오쩌둥은 ‘심알동 광적량 불칭패(深挖洞 廣積糧 不稱霸)’라는 교시를 남겼다. ‘굴을 깊게 파고, 식량을 비축하며, 패권자라 칭하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이 아직 강국의 지위를 획득하기 이전,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제시한 것이다.

덩샤오핑 시대의 외교 기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본격적인 국력 증대기에 패권국과 여타 강국의 견제를 피하기 위한 지침이었다.

도광양회 기조는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1990년대 “대국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다”는 장쩌민의 선언과 함께 책임대국론(責任大國論)이 제기됐다. 동시에 ‘필요한 역할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 구호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미국 패권의 단극(單極) 국제체제에서 강국의 하나로서 위상을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장쩌민을 뒤이은 후진타오의 집권 전반기엔 ‘평화롭게 부상한다’는 뜻의 화평굴기(和平崛起)가 등장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위협론이 서구에서 제기됐고, 2001년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 속에서 미국 패권체제에 대해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기에는 아직 경제력과 군사력이 부족한 처지를 반영하는 문구로 해석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중국이 ‘세계의 채권국’ 역할을 맡게 됐다. 미국에 대해 중국이 상당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자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뜻의 돌돌핍인(咄咄逼人)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중국의 압력으로 17개국 100여 개 국제단체가 불참한 일이 당시 중국의 변화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시진핑 시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전략목표는 보다 명징한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두 개의 백년’을 언급했는데 이 구호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中華民族偉大復興中國夢)’을 이룩하기 위한 전략목표로 인식되어 왔다. 두 개의 백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소강(小康)사회’를 완성하여 전 인민이 중산층 시대로 진입하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부강·민주·문명·화해의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완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란 비전은 표현이 약간씩 다르지만 세대를 초월해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공유되어 왔다. 장쩌민은 2002년 11월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 보고문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언급하며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은 역사와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엄중한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후진타오 역시 2007년 제17기 전국대표대회 개회사를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언급했다. 『중국의 세계전략』을 쓴 예쯔청은 중국 지도자들이 반복해 언급해온 중화민족 부흥이란 목표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수립한 중국 대전략의 연장선이라고 파악했다.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시진핑이 내세우고 있는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의 꿈’에 담겨 있는 중국의 전략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그레이엄 앨리슨 제공]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그레이엄 앨리슨 제공]

-서양 세력의 침략 이전 중국이 아시아에서 누렸던 지배적 영향력을 회복한다.
-본토의 신장(新疆)과 티베트뿐만 아니라 대만과 홍콩을 포함한 ‘더 큰 중국’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한다.
-접경 지역과 근해에서 과거의 세력권을 회복해 주변국들에 강대국으로서 대접을 받는다.
-각종 국제기구에서 다른 강국들에게 중국에 대한 존중을 표할 것을 요구한다.

위 내용을 타당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중국의 전략 목표는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침략 이전처럼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국 지위를 회복한다.
-변경 소수민족 자치구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분쇄하고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폐기하며 대만과의 통일을 이룩해 완전한 하나의 중국을 수립한다.
-동아시아에 과거와 같은 천하관(天下觀)에 입각한 위계적 질서를 재확립한다.
-국제기구들에서 중국이 최소한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비토(veto)권을 가지는 지위를 획득한다.

위의 네 가지 명제는 그간 중국 정부가 보여준 행태를 볼 때 명확하다. 중국 지도부 내부 사정에 밝았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그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에 대해 “사방의 제후들이 조공을 바치기 위해 베이징을 찾던 시절처럼 중국이 다른 나라들 위에 군림하고, 다른 나라들은 스스로를 자신보다 우월한 나라에 상소를 올리는 처지로 여기는 세계”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되찾고 이 지역에서 구현하려는 국제질서는 형식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진 국민국가(nation-state)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천자국과 제후국이라는 위계적 질서를 가진 과거 동아시아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국은 점차 대(對)홍콩 원칙인 일국양제를 유명무실화하려는 시도를 강화해 왔다. 2009년 반분열국가법 홍콩조항 신설과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제 변경, 2019년 범죄인 송환법 실시 시도 등이 그 사례들이다. 미국 등 서방이 계속 문제제기하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족 집단수용은 위구르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한 발본색원을 목표로 한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은 위안화의 IMF 특별인출권(SDR) 확대를 줄곧 주장해 왔다. 국제 거래 통화로서 위안화의 힘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해 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규범 및 제도에 맞서 중국 중심의 대안적 규범·제도를 수립하고 있다.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런 중국의 전략목표는 21세기에 수립된 것이 아니라 신중국 1세대 지도부, 더 나아가 중화적 세계관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버드대에서 현대 중국을 연구한 1세대 중국학자 존 페어뱅크는 헨리 키신저와 리처드 닉슨의 방중 전인 1969년 중국의 대외 정책을 3가지 요소로 설명했다. 첫째 주변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요구, 둘째 주변국들이 중국의 내재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 셋째 주변국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휘하기 위해 그런 지배력과 우월성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다. 그의 시각 역시 위에서 설명한 중국의 전략목표 내용과 사실상 일치한다.

이 같은 전략목표들은 요약하면 동아시아에서 중화 패권의 확립과 그런 중화 질서에 대한 국제적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경제와 군사, 소프트 파워의 측면에서 하위 전략을 펼쳐 나가고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한 시진핑 지도부의 신형대국관계와 일대일로, 대양해군 전략이 그것이다. 이 세 전략은 각각 다른 차원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신형대국관계가 외교, 즉 연성권력 측면의 전략이라면 일대일로는 경제적 측면, 대양해군은 군사적 성격의 전략이다. 신형대국관계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추구하는 동진 전략이라면,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지역에 중국 중심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서진 전략이다. 대양해군은 남중국해를 통해 대양으로 진출, 중국의 군사력을 세계적 범위로 투사하려는 남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및 서방 세력과 전략적 구조적 경쟁에 돌입한 시진핑의 중국이 경쟁국들의 견제를 극복하고 전략목표 달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 결국 경쟁에서 실패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지 주목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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