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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서비스? 전기·물도 없는 '썩은 집'...요새 中 이렇다 [세계 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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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陝西)성 퉁촨(銅川)의 건설 노동자 스톄뉴(39)는 지난 5월 꿈에 그리던 '가오톄 웰니스 시티' 아파트 단지에 입주했다. 그가 분양 대금을 치른 건 2015년. 그간 피땀 흘려 모은 27만6000위안(약 4900만원)을 몽땅 털어 넣었다. '회장님들이 누리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말이 퍼져 분양 당시 인기를 누리던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전기와 가스,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썩은 집'으로 통한다. 엘리베이터 작동이 안 돼 20층까지 계단으로 걸어올라가야 한다. 입주민들은 가스버너가 놓인 1층 공동주방에서 밥을 짓는다. 공동 세면장도 한 곳뿐이라 마음껏 씻어본 일이 없다. 이 아파트에 사는 전직 광부 가오(60)도 로이터통신에 "번 돈 전부를 여기 썼다"며 "몇 년 뒤엔 나이를 먹어 계단을 오를 수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중국 각지에서 미완공된 건물을 뜻하는 '란웨이러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집들은 수도와 가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썩은 집'으로 통한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중국 각지에서 미완공된 건물을 뜻하는 '란웨이러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집들은 수도와 가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썩은 집'으로 통한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이 아파트처럼 짓다가 만 상태로 흉물이 된 주택을 중국 현지에선 '란웨이러우(爛尾樓·뒤끝이 나빠진 집)'라고 부른다. 견디다 못한 이 이파트 주민 수십 명은 이달 초 "란웨이러우를 해결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BBC 등 외신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 단지는 2015년 이후 사실상 건설이 중단됐지만, 2020년까지 버젓이 분양을 계속했다. 개발 주체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사업은 표류했다. 입주자 대부분은 퇴직자나 노동자로,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다. 이를 두고 BBC는 "전 인민이 집을 갖도록 하겠다"고 했던 시진핑 주석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상황을 꼬집었다.

이곳 뿐 아니다. 지난해엔 중국 남부 광시좡족 자치구의 구이린시에 '흉물 미완공 아파트'가 현지 매체의 조명을 받았다. SNS에는 후베이성 등 다른 아파트 단지의 피해자들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중국 MZ세대 중엔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미완공 아파트에 침대 등을 갖추고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SNS에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보이는 미완공 주택을 인테리어해서 사는 중국 MZ세대들. 사진 샤오홍슈 캡처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보이는 미완공 주택을 인테리어해서 사는 중국 MZ세대들. 사진 샤오홍슈 캡처

UBS "中, 부동산 회복돼도 과거 60%에 그칠 듯"

왜 이렇게 란웨이러우가 속출했을까. 경기가 좋았던 시절 중국 부동산 업체들은 대규모 주택 프로젝트들을 앞다퉈 진행했다. 당시엔 통상 공사 중인 아파트를 미리 팔고 사전에 받는 계약금으로 사업 자금을 조달했다. 특히 상당수 지방 정부는 공정률이 25%만 되어도 사전 판매 허가를 내줬다.

집을 샀지만 미완공돼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 사진 경제일주 홈페이지 캡처

집을 샀지만 미완공돼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 사진 경제일주 홈페이지 캡처

이게 화근이었다.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건설사가 분양 대금을 다 받고도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해 건축이 중단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이런 미완공 아파트는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증했다.

주택 구매자의 불만이 이어지고 항의 시위와 함께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자,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 규제 당국은 금융권에 아파트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게 관련 대출을 늘려주라고 촉구하고 있다. 또한 '시진핑 신도시'라 불리는 허베이성 슝안신구에선 주택 분양은 완공 이후에만 하도록 제한했다.

지난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미완공 아파트로 입주에 차질을 빚는 곳은 최소 240만 가구로 추정됐다. 게다가 2021년 헝다 사태 등 부동산 위기가 시작되고 올해 5위 업체인 비구이위안까지 도산 위기에 몰리면서 중국 부동산 문제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됐다.

서방 언론에서는 중국인들 중에 미완공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서방 언론에서는 중국인들 중에 미완공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중국 부동산업체의 연쇄 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18일엔 중국 10위권 부동산 개발업체인 수낙이 미국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수낙은 채권자들로부터 100억 달러(약 13조3000억원) 규모의 채무 구조조정을 승인받은 직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외 채권자들과 협상할 시간을 벌 목적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한 아파트 벽에 란웨이러우를 규탄하는 내용이 붙어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중국의 한 아파트 벽에 란웨이러우를 규탄하는 내용이 붙어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문제는 중국 부동산 업체들이 신규 주택판매를 못 하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단 점이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UBS는 향후 중국의 부동산 판매와 건설이 회복된다고 해도 정점을 찍었을 때의 50~60%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광저우를 방문한 한 남성이 "뒤로 보이는 건물이 전부 란웨이러우"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중국 광저우를 방문한 한 남성이 "뒤로 보이는 건물이 전부 란웨이러우"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WSJ에 "특히 중국 중소도시에서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로고프 교수는 "중국 경제 총생산(GDP)에서 29%인 부동산이 붕괴하면 13억명의 중국인이 패닉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中 부동산세 도입 또 미뤄져

한편 심각한 부동산 위기 탓에 중국 정부는 2011년부터 검토해 온 부동산세 도입을 또 연기했다. 자산 격차를 줄이는 방편으로 추진돼 온 부동산세 도입이 재차 미뤄지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다 같이 잘 살자’며 내놓은 '공동부유'의 실현도 늦춰지게 됐다.

20일 중국 경제관찰보에 따르면 중국 입법기구인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공개한 입법 계획에 ‘조건이 성숙해 임기 내 추진할 법안’ 79건, ‘조건이 성숙할 경우 추진할 법안’ 51건 등을 발표했지만 이 안에 부동산세 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경제관찰보는 "입법계획에 부동산세 법안이 빠졌다는 것은, 향후 5년 안에 부동산세 법안이 심의를 위해 제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에서도 부동산 거래시에 세금을 내지만 한국의 재산세,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부동산 보유에 따른 세금은 없다. 과거 국가가 토지와 주택을 소유했기 때문인데, 1990년대 후반부터 주택 소유권이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왔음에도 여전히 보유세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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