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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만 참가" 은밀한 모집…'살해 훈련' 獨격투기 대회 정체 [세계 한잔]

중앙일보

입력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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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나치 그룹 '니벨룽의 전투'는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연 자신들의 종합격투기(MMA) 대회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다. 참가자들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을 가렸다. 사진 니벨룽의 전투 유튜브 캡처

독일의 신나치 그룹 '니벨룽의 전투'는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연 자신들의 종합격투기(MMA) 대회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다. 참가자들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을 가렸다. 사진 니벨룽의 전투 유튜브 캡처

독일 프로 종합격투기(MMA) 선수 니코 삼소니드세. 몇년 전부터 대회에 참가하기 전 그가 우선 확인하는 것이 있다. 대회를 주최하는 곳이 극우 극단주의 단체인지 아닌지다. 동료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하고 있는 삼소니드세는 격투 스포츠에서 극단주의를 몰아내는 것을 주제로 한 논문까지 썼다. 그는 “독일에서 MMA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 주위에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독일 신(新)나치주의 단체들이 격투기를 세력 확장의 도구로 삼고 있다. 유럽 내에서 MMA 관련 대회나 축제, 격투기 강습 행사를 열고 백인 청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를 통해 극우주의 이념을 전파하고 단원을 모집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나치문양·극우문구 숨겨 의심 피해

독일의 신나치 그룹 '니벨룽의 전투'가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연 종합격투기(MMA) 대회 '유러피언 파이트 나이트' 의 홍보 로고. 나치 문양 등을 그리지 않아 극우 단체가 주최한 대회인지를 알 수 없게 해 놨다. 사진 니벨룽의 전투 유튜브 캡처

독일의 신나치 그룹 '니벨룽의 전투'가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연 종합격투기(MMA) 대회 '유러피언 파이트 나이트' 의 홍보 로고. 나치 문양 등을 그리지 않아 극우 단체가 주최한 대회인지를 알 수 없게 해 놨다. 사진 니벨룽의 전투 유튜브 캡처

이들의 행사는 얼핏 보면 신나치 단체가 주최했다고 알아차리기 어렵다. 신나치 조직 ‘니벨룽의 전투’(Kampf der Nibelungen)가 유튜브에 올린 MMA 대회 홍보 영상을 보면 독일에서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하는 나치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나 극우주의 선동 문구가 없다. 일반적인 격투 스포츠처럼 꾸며 청년들이 거부감 없이 다가가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자체 패션 브랜드를 단 상품이나 행사 티켓을 판매해 돈벌이도 한다.

극우 인사 연설 등으로 은밀히 추종자 모집

독일의 신나치 그룹 '니벨룽의 전투'의 자체 홈페이지 모습. 자신들이 만든 브랜드를 단 티셔츠나 모자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 니벨룽의 전투 홈페이지 캡처

독일의 신나치 그룹 '니벨룽의 전투'의 자체 홈페이지 모습. 자신들이 만든 브랜드를 단 티셔츠나 모자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 니벨룽의 전투 홈페이지 캡처

극우단체는 자신들의 본색을 은밀히 드러낸다. 대회 과정에 우익 극단주의 인사의 연설이나 관련 세미나를 끼워 넣는 식이다. 일반적인 유럽의 MMA 대회와 다르게 대회 참가 선수를 백인으로만 한정하고, 유튜브 영상에서 참가자들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방법도 쓴다.

은연중에 백인 청년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려는 시도다. 독일 시민단체 ‘극단주의 대응 프로젝트(CEP)’의 한스 야콥 쉰들러 국장은 “(신나치 단체들은) 사람들이 티셔츠를 사러 축제에 오게한 뒤 현재 정치제도가 얼마나 나쁜지 이야기한다”며 “과거보다 교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 후 살해 계획까지 세워

지난 201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극우주의 행동단체 조직원들이 나치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들고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극우주의 행동단체 조직원들이 나치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들고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신나치 단체의 격투스포츠 조직이 각종 폭력 행위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독일 연방검찰은 극우주의 단체와 연관된 격투 스포츠 조직에 속한 21~25세 남성 4명을 체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녹아웃 51’이라는 격투기 클럽에서 젊은 남성들에 끌어들여 우익 극단주의 사상을 의도적으로 세뇌했다.

이후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NDP)의 지역 사무소에서 정기적으로 격투기 훈련을 하고, 경찰이나 좌파 정치인들과 물리적 충돌을 벌이기 위한 훈련을 시켰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독일 중부 튀링겐주(州)에선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경찰관을 폭행했다. 극좌주의자들을 살해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단속·자정운동에도…해외로 퍼지는 극우 격투단체

지난 19일 독일 북부 자멜에서 경찰이 신나치 단체 '해머스킨 도이칠란드'의 주동자 스벤 크뢰거를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 독일 북부 자멜에서 경찰이 신나치 단체 '해머스킨 도이칠란드'의 주동자 스벤 크뢰거를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나치 조직들의 움직임에 심각성을 느낀 독일 당국은 격투기 클럽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수사를 벌여왔다. 녹아웃 51 주동자 4명도 경찰이 극우주의자로 의심되는 50명의 주거지를 지난 4월 대대적으로 수색하는 과정에서 체포됐다. 신나치 단체가 주도하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격투 클럽을 폐쇄하고 격투대회나 행사도 금지했다.

독일 내 격투기 지도자들도 자정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삼소니드세처럼 격투기 선수들은 신나치 단체와 관련된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극단주의 배격을 내세우는 격투기 클럽을 만들어 수강생들에게 교육하는 식이다.

이런 노력에도 신나치 조직의 활동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독일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자 해외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9년 독일에서 활동 금지를 당한 ‘니벨룽의 전투’는 지난 5월 헝가리에서 MMA 대회를 개최했다. 알렉산더 리츠만 CEP 선임고문은 ”프랑스에서만 이미 23개의 극우 격투기 클럽이 활동하는 등 극우 성향 격투기 단체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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