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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종학의 경영산책

남성적인 얼굴을 가진 CEO가 일도 잘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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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경영학 분야 학술 연구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 중 하나는 CEO의 특성이 기업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목소리의 높이(pitch), 외모의 매력도, 키, 비만, 종교, 군 복무 경험 등이 개인의 직업적 성과, 보수, 투자 성향, 재무보고 등 다양한 분야와 연관되어 있다는 학술적 발견이 있다.

“얼굴 넓을수록 남성적” 연구
기업인·정치인 등에서도 관찰
자신감 넘치지만 공격적 성향
업무에 따라 필요한 성격 달라

이런 연구 중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발견이 독특하다. 남성적인 성향을 초래하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자신감이 상승하고 승부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다하게 분비되면 충동적이고 욕구를 잘 절제하지 못한다. 남성적인 성향의 사람은 목표지향적이고, 활동적이며, 자신만만하고, 남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얼굴이 넓을수록 남성적

얼굴이 넓을수록 남성성이 강하다?

얼굴이 넓을수록 남성성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마다 테스토스테론이 얼마나 분비되는지를 의학적으로 검사할 수 없다. 그래서 사용하는 방법이 얼굴 생김새를 가지고 구분하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얼굴에 있는 뼈의 성장을 촉진하여 광대뼈와 턱뼈를 발달시켜 얼굴이 커지게 만든다. 따라서 얼굴의 가로 길이(양쪽 광대뼈 사이의 거리)를 세로 길이(눈꺼풀 상단에서 입술 상단까지의 거리)로 나눈 수치(fWHR 이라고 부름)를 이용해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는 정도를 유추할 수 있다. 수치가 클수록, 즉 세로가 긴 갸름한 얼굴보다 가로가 긴 넓은 얼굴이 더 남성적이라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심리학, 인류학, 의학, 법학, 경영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fWHR을 이용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연구의 발견에 따르면 fWHR이 더 큰 사람은 적극적이고, 성욕도 강하며, 이성에게 인기가 많으며, 반사회적 또는 폭력적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투자도 좀 더 공격적으로 한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운동도 잘하지만 경기 중 반칙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다. 동물의 경우도 fWHR이 큰 동물이 집단에서 우두머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한 CEO의 fWHR 수치는?

일반인들의 fWHR 평균은 1.7 정도인데 반해 CEO들은 1.8~1.9 정도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마윈의 경우 2가 넘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위험을 감수한 투자에서 성공해서 CEO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보니 남성성이 강한 것이다. 한국 경영자들의 경우 창업자 CEO들은 1.9가 넘었는데 반해 2세 CEO들은 1.85 정도였다. 즉 2세 CEO도 이 수치가 일반인들보다 높기는 하지만 창업자만큼은 안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평균도 1.99로 상당히 높다. 즉 CEO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fWHR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관계는 남자들 사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지만 여자들도 일부 해당한다.

그렇다면 남성적인 얼굴을 가진 CEO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들은 위험한 투자안도 쉽게 채택하며, 부채도 더 많이 늘리고, 인수합병도 더 많이 시도한다. 과감한 투자가 성공해서 큰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유명한 회사의 CEO 중에 fWHR 수치가 큰 사람이 많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fWHR 수치와 기업의 성과에는 정(+)의 관련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과감한 투자가 실패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기업 성과의 변동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쪽박을 찬 경우도 있을 것이다. 즉 아직 과학적 연구 결과는 없지만 실패한 CEO들의 경우도 fWHR 수치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fWHR이 높은 CEO는 좀 더 공격적으로 회계처리하거나 이익조정하는 것을 선호하므로 회계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관찰됐다. 이에 반해 fWHR 수치가 낮아 여성성이 좀 더 강한 CEO가 경영하는 기업에서는 연구·개발(R&D) 지출이나 특허출원 수가 높다. 즉 꼼꼼하기 때문에 신중히 연구하고 분석하는 성향이 나타난다.

복잡한 조직에선 큰 관련 없어

이런 결과를 보면 남성성이 높은 CEO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없다.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더 높은 CEO가 적합한 기업도 있다는 의미다. 동일한 기업에서도 업무에 따라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를 것이다. 성과가 우수한 기업의 CEO가 평균적으로 fWHR이 높지만, 이런 현상도 최고경영진 내의 조직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회사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즉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현대 대기업의 경우, CEO 남성성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다. fWHR이 높은 남녀 대학생 모두 비계량적 교과목 성적이 우수하지만, 계량적 교과목에서는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학술적 발견이 있다고 해서 사람의 얼굴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모 대기업 회장은 사원 면접을 할 때 관상을 보는 사람을 동반했다고 한다. 정보가 부족한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성품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관상이 일부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경력직을 뽑는 경우라면 관상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fWHR에 대한 발견도 통계일 뿐이며 모두가 통계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그 사람을 꾸준히 관찰해서 그 사람의 성품과 장단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특성에 알맞은 일을 할당해주어야 할 것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