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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북 전단 금지법 위헌 결정, 사필귀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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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20년 6월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드러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중앙포토·연합뉴스

2020년 6월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드러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중앙포토·연합뉴스

헌재 다수 의견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 결론

김여정 위협에 무리한 입법 문 정부 반성해야

헌법재판소가 어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우리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전임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한 지 2년9개월 만이다. 이 법은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헌재가 7대2의 다수 의견으로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면서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게 됐다.

대북 전단 금지법은 애초부터 무리한 입법이었다.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 정도였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 보장을 입법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내비친 게 그 배경이었다. 당시 정부는 우리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제한하면서도 접경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선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도 이런 모순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헌재 재판관 중 네 명은 “심판 대상 조항(대북 전단 금지법)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비난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는 건 북한인데 전단 살포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헌재의 결정이 무분별하게 대북 전단 살포를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헌재는 대북 전단을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경우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하거나 사전 신고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대북 전단은 보수 정부에서도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에는 북한이 대북 전단을 실은 풍선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전단 살포를 제지하고 탈북자 단체를 만나 자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앞으로 대북 전단 금지법처럼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과잉 입법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당시 입법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민주당은 이제라도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동시에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효율적으로 지킬 방안을 강구하길 바란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확고하게 지키면서 국민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