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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해운대선 2년 만에 43억 시세차익…규제 틈새 파고든 '생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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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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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가을로 가는 길목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뙤약볕 아래 빼곡했던 인파가 사라진 백사장은 초록으로 무성했던 잎이 드문드문해진 가을 산을 연상시킨다. 바다와 백사장 못지않게 방문객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는데 바로 옆 초고층 엘시티 복합단지다. 국내 최고층(84층) 아파트 2개 동과 이보다 더 높은 랜드마크타워 동(101층)으로 이뤄져 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옆에 들어선 엘시티 복합단지. 왼쪽의 가장 높은 건물(101층, 411m)인 랜드마크타워동 22~94층에 생활숙박시설인 엘시티더레지던스가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옆에 들어선 엘시티 복합단지. 왼쪽의 가장 높은 건물(101층, 411m)인 랜드마크타워동 22~94층에 생활숙박시설인 엘시티더레지던스가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아파트보다 비싼 생활숙박시설 

같은 단지지만 바다 조망권 값이 다르다. 랜드마크타워 동이 아파트보다 비싸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182㎡(이하 전용면적) 85층이 지난해 최고 56억원까지 거래됐다. 현재까지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186㎡) 최고 실거래가가 48억원이다. 전세보증금의 경우 아파트가 올해 20억원(실거래가)까지 나갔는데 랜드마크타워 동은 호가 기준으로 24억~28억원이다.

아파트형 호텔을 주거용 변경
전국 9.6만실 중 절반이 '불법'
주택시장 규제 틈새 반사이익
세금 중과 부담 없이 시세차익

랜드마크타워 동에 살지 않으면서 잠깐 바다 조망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매입이나 임대하지 않고 숙박하면 된다. 호텔 예매 사이트에 보면 다음 달 초 182㎡ 평일 1박 요금이 84만5000원이다.

엘시티더레지던스 90층 거실.

엘시티더레지던스 90층 거실.

어떻게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주거와 숙박이 공존할까. 생활숙박시설(엘시티더레지던스)이어서 가능하다. 생활숙박시설이란 일반적인 호텔과 달리 오랫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조와 기능에서 사실상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다 보니 주거용으로 쓰이게 됐다.

☞생활숙박시설

욕실·샤워실만 갖춘 일반숙박시설과 달리 장기 투숙자를 대상으로 취사·환기시설까지 갖춘 '아파트형 호텔'이다. 건물 일부를 숙박시설로 쓰려면 객실이 30개 이상이어야 한다. 개인은 숙박업 신고를 하고 위탁운영사에 운영을 맡기면 된다.

하지만 주거용은 불법이다. 숙박시설은 숙박업 신고를 하고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시설·설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을 해야 한다. 주거시설로 쓰면 불법 용도변경에 해당한다. 불법 용도변경이 성행하는 것은 생활숙박시설이 규제의 사각지대여서다.

절반가량이 숙박업 신고

문재인 정부가 제도 도입 9년만인 2021년 뒤늦게 주거용 생활숙박시설을 규제하기로 했다. 건축기준 등 관련 규정을 보완하며 대신 단속을 2년간 유예했다. 다음 달 14일까지다. 이때까지 숙박업 신고를 하거나 계속 주거용으로 쓰려면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라며 용도변경 요건을 일부 완화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8월 기준으로 전국 생활숙박시설 9만6000실 중 절반가량인 4만7000실이 숙박업 신고를 했다. 나머지 4만9000실이 불법 용도변경한 셈이다. 각 자치단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숙박업 신고 현황이 엘시티더레지던스 561실 중 219실, 부산 초량동 협성마리나G7 1028실 중 500실, 인천 송도 랜드마크푸르지오시티 1990실 중 772실 등이다. 6월 준공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오이 음지 젤 408실 중 140실이 신고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숙박업 신고가 꽤 이뤄졌지만, 오피스텔 용도변경은 미미하다. 업계는 전국적으로 1000실 정도로 본다. 자치단체에 따르면 해운대 에이치스위트해운대(560실)에서 숙박업 신고 없이 4실이 용도 변경했다. 송도 오네스트(468실)도 2실이 오피스텔 용도변경만 했다. 대부분 오피스텔로 갈아탄 곳도 눈에 띈다. 제주시 연동 메종프라임연동 164실 중 131실이 지금은 오피스텔이다. 엘시티더레지던스는 오피스텔을 설치할 수 없는 인허가 조건이어서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오피스텔 용도변경 건축기준을 완화했지만, 해당 지역 도시계획상 용도변경을 할 수 없거나 건물 구조상 완화된 건축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예기간 만료가 다가오며 생활숙박시설 소유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정부가 25일 유예기간을 내년 말까지 늦추기로 했다. 다만 오피스텔 용도변경 요건 완화는 다음달 14일로 종료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완화가 끝나더라도 건축기준에 맞으면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은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가표준액 10% 이행강제금

생활숙박시설 소유자들은 어려워진 용도변경이 물 건너간 셈이어서 숙박업 신고를 고민해야 한다. 불법 용도변경에 따른 이행강제금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불법 용도변경으로 적발되면 용도를 원상복구까지 매년 한 차례씩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시가표준액의 10%다. 엘시티더레지던스의 시가표준액을 산출한 결과 실크기에 따라 2900만~5600만원으로 예상된다. 182㎡가 4600만원 정도다.

이행강제금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법 용도변경으로 적발되면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 딱지가 붙어 대출을 회수당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이후 담보 건축물의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담보 교체나 여신 회수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부산 초량동 생활숙박시설 협성마리나G7 평면도.

부산 초량동 생활숙박시설 협성마리나G7 평면도.

생활숙박시설은 주택이 아니어서 주택만큼 강한 담보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대개 거래가격의 70~80%까지 대출을 받았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말 입주 후 지금까지 거래된 엘시티더레지던스 실거래가가 평균이 33억원이다. 평균 대출금액이 20억 원대다.

숙박업 신고를 하려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데, 반환할 전세보증금이 적지 않다. 엘시티더레지던스의 경우 10억~20억원 선이다.

생활숙박시설이 골칫거리로 떠올랐지만, 규제 논란의 와중에 이미 빠져나간 단타족에겐 '로또'였다. 문 정부 부동산 과열기 때 규제가 극심하던 주택시장에서 나온 투자 수요가 ‘틈새 상품’의 하나로 꼽힌 생활숙박시설로 몰리며 몸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30억원이던 엘시티더레지던스 205㎡가 준공 2년 2021년 말에 73억원에 거래됐다. 30대가 경기도 남양주시 생활숙박시설 46층 펜트하우스를 10억원에 분양받아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고 2년간 임대해 보유한 뒤 7월 19억원에 팔았다. 생활숙박시설이 주택이 아니어서 양도세·종부세 다주택자 중과 적용을 받지 않아 매도자는 차익 대부분을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