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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공급 효자' 도시형주택 두달 연속 '0'…인허가·착공·준공 마이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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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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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주택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공급 속도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주택공급 주요 3단계 과정(인허가·착공·준공)에 모두 빨간불이 켜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 7월까지 서울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물량 대비 비율이 인허가 -34.4%, 착공 -67.9%, 준공 -37.1%를 나타냈다.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올해 인허가 실적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최저로 예상된다. 주택공급 감소가 이미 지난해 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주택건설업계가 집 지을 생각이 확 줄어든 데다 인허가를 받아 놓고도 선뜻 공사에 나서지 않는다. 공급 선행지표인 인허가·착공 감소로 시장에 실제로 주택을 공급하는 준공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하락한 데다 주택공급 선행 지표들이 일제히 급락해 주택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주택보급률이 하락한 데다 주택공급 선행 지표들이 일제히 급락해 주택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 우려

그러잖아도 주택수급 지표인 주택보급률(가구수 대비 주택수)이 낮은 상황이다. 최근 통계인 2021년 기준으로 전국 102.2%, 서울 94.2%다. 지난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각각 104%, 96% 넘게 올랐다가 주택공급 물량이 가구수 증가 등을 쫓아가지 못해 뒷걸음질 쳤다. 학교 성적으로 치면 등수(보급률)가 내려간 마당에 점수(공급)가 더 떨어지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가 연상된다. 금융위기 충격으로 바로 그해부터 인허가·착공이 급감했고 이듬해인 2009년부터 준공 감소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를 이은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2011년부터 인허가가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 기간 시차로 준공 물량은 2014년에서야 예년 수준으로 올라섰다.

올 들어 착·준공 30~60% 급감
주택보급률 제자리, 수급 비상
효자 ‘도시형주택’ 두 달째 ‘0’
‘1+1’ 재건축 등 제도 보완해야

권대중 서강대 교수(부동산학과)는 “금융위기 이후 5~6년간 누적된 주택공급 부족이 이후 금리 인하 등에 따른 유동성 급증과 맞물려 집값 폭등을 낳았다”고 말했다.

집값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적 ‘뇌관’이다. 지금의 공급 부족이 지속해 집값 급등의 불씨로 지목된다면 4년 뒤인 2027년 대선판을 뒤흔들 수 있다. 이를 염려한 것인지 대통령실이 나서 지난 1일 “부동산 공급 활성화 방안을 9월 중에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대책을 서두르고, 원희룡 장관은 6일 “연말까지 공급 부족을 해소하지 못하느냐 아니면 일시적으로 공급 최저점을 찍고 상승하느냐는 2~3년 뒤 집값에서 큰 차이를 불러올 것”이라면서 “확대 흐름으로 갈 수 있도록 총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양보다 안정적 공급망 확보"

공급 감소의 주요 원인은 수요 감소다. 수요는 집값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집값 급락이 공급에 급브레이크를 건 셈이다. 공급망 교란도 작용한다. 복잡한 인허가, 급등한 공사비, 자금난, 부실공사 등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움츠러든 수요를 무시한 과도한 부양책은 나중에 과잉공급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정부는 이전 집값 폭등을 기준으로 발표한 '5년간 270만 가구'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뒷받침부터 해야 한다. 새 대책 못지않게 기존 제도 손질도 필요한데 금융위기 이후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됐다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제도가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2009년 2월 만들어진 도시형생활주택이다. 이는 주택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 위한 처방이었다. 주차장 등 건설 기준을 완화하고 분양가 규제(분양가상한제)에서 제외하며 청약통장 필요 없이 임의로 분양할 수 있는 주택이다. 유형은 다세대·연립주택·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지만 전용면적(85㎡ 이하)과 단지 규모(현재 300가구 이하)가 제한됐다.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단지 규모가 작고 인허가와 분양 절차가 간단해 빨리 공급량을 늘릴 수 있었다.

반포에서 아파트 711가구 사라져

도시형생활주택은 서울에서 한때 전체 주택 인허가 물량의 40%까지 차지할 만큼 공급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 지난해 10%대로 떨어졌다가 올해 들어 10%도 위태로워졌다. 월별 실적을 보면 한 달에 4000건을 넘기기도 했는데 인허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9년 4월 이후 처음으로 지난 5~6월 2개월 연속 ‘0’을 기록했다.

지난해 2월 정부가 아파트 도시형생활주택(원룸형)의 크기를 늘리는 등 규제를 일부 완화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전세 사기’의 영향이 크다. 대부분 소형 주택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의 불똥이 도시형생활주택으로 튄 것이다.

김선주 경기대 교수는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고 추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명박 정부가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2012년 도입한 게 기존 주택을 둘로 쪼개는 ‘1+1’ 재건축·재개발이다. 조합원이 기존 주택의 크기 내에서 두 채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한 채는 전용 60㎡ 이하여야 한다. 전용 145㎡로 ‘84㎡+59㎡’를 받는 식이다.

집을 줄여서 거주하는 대신 나머지 소형주택을 임대하거나 자녀에게 증여할 수 있어 대형 주택 보유자의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세금 폭탄’을 맞았다. 종부세·양도세 다주택자 중과다. 소형주택은 3년간 팔지 못하고 문 정부의 임대주택사업자 규제 강화로 종부세·양도세 감면 혜택이 있는 임대주택 등록도 할 수 없게 됐다.

세금 급등을 우려한 주민들이 잇따라 1+1을 포기하면서 재건축 등의 주택공급량이 줄어들고 있다.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 서초구 반포 일대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반포주공1단지와 신반포4지구 건립계획이 당초 총 9020가구에서 8309가구로 711가구 감소했다. 웬만한 아파트 단지 하나가 없어진 셈이다.